
젊은 시절부터 1남 3녀를 홀로 키워오며 고생 많았던 어머니.
어머니는 동네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품을 팔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 오셨다. 엄지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어 5급 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가족들을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학창시절, 내게도 꿈은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업에 성공해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뛰어 들었다. 학업을 더 이어갈 수 없었던 형편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머니의 고생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학력도 재산도 없었던 내게 사회는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어린 나이였고 뭐 하나 내세울 만한 것도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사장 일용직 노동자일 뿐이었다. 공사현장 이곳저곳을 돌며 잡부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은 무리야.”
“잡부 일에 이정도 임금이면 괜찮지.”
“오늘은 일거리가 없어.”
세상이 내게 던지는 말들이었다. 절망적이었다. 겨울이면 공사가 중단되거나 일거리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집도 좋은 차도 가질 수 없었다. 하루 벌어들인 일당은 하루 생활비로 쓰기에도 빠듯했고 두 동생의 결혼 준비도 해야했다. 시간이 흘러 두 동생은 모두 출가해 각자의 가정을 꾸렸고 이제 어머니와 나만 집에 덩그러니 남게 됐다.
지적장애 있음에도 장애판정 못 받아
“탕, 탕, 탕”
10여 년 전쯤 공사장에서 망치질을 하던 때였다. 그날따라 아무리 망치질을 해도 헛손질만 반복됐다. 고생 끝에 행복이 온다는 말과 달리 내게 찾아온 건 뇌졸중이었다.
없는 살림에 몸이라도 고장 나면 어떡하나 싶어 찾았던 병원이었는데 3~4개월은 족히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초기증상을 보일 때 치료할 수 있었다.
이후 어딘지 모르게 생각하는 것과 행동이 이상했다. 지적장애를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왼쪽 어깨부터 발까지 감각이 둔하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들이 튀어 나온다. 주변 사람들이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어둔하다는 말을 했다.
지적장애를 갖게 되면서 일거리는 다시 줄었다. 지금은 나를 잘 배려해 주는 현장소장님을 만나 잔일거리를 꾸준히 얻어 생활할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일거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3년 전에는 마당 앞에 심어 놓은 감나무 가지가 전선에 닿아 어머니가 감전될까봐 나무에 올라 가지를 꺾어내려는 찰나 발을 헛디뎌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팔과 다리가 부러졌다. 지금도 수술 당시 뼈를 고정한 철심이 남아 있다.
어려운 처지를 알았는지 지인 몇몇이 장애인으로 등록해 각종 혜택을 받으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장애인 등록을 하려 했지만 내 증상이 장애등급을 판정 받기에는 미약한 수준이라고 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장애인으로도, 비장애인으로도 살 수 없다”, “안됐다”, “딱하다”는 이야기만 했다.
어려운 형편에 찾아온 화재
평소 집안일이며 마을의 궂은일을 척척하던 어머니가 언제부터인지 기억을 깜빡깜빡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치매증상을 보이는 거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스렌지 위에 올려놓은 음식들을 잊고 다른 일을 해 집이 모두 불탔다. 나와 어머니는 화상을 입고 한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가진 것도 없는 살림에 그나마 있던 생필품이며 집까지 모두 재가 됐다. 당장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데 어머니와 함께 지낼 거처도 돈도 없었다.
막막한 상황에 마을 이장님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전해져 왔다. 합덕읍사무소를 통해 화상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남부행복나눔복지센터와 연계해 희망하우스 입주가 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마을주민들도 회의를 거쳐 어머니와 나를 돕겠다며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여러 단체에서도 이불세트며 옷가지, 반찬, 그릇세트도 가져다 줬다.
몇몇 단체에서는 화재로 다 타버린 집을 부수고 새롭게 집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이제 곧 겨울이라 빨리 공사를 진행해야 된다며 많은 사람들이 분주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와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도움을 준 이웃들을 생각해서라도 올 겨울엔 일거리를 찾아볼 계획이다. 그동안 화재와 아픈 몸 상태로 일터에 나가지 못했지만 이제는 소일거리라도 찾아봐야겠다.
>> 도움을 주신 분들
창정리 주민들(이장 박용출)
- 지원금 전달
창정리 노인회를 비롯해 부녀회, 청장년회에서도 주민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고 지원해줘 마을 주민 간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하는 요즘 시대에 좋은 귀감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창정리 노인회(회장 김연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웃을 주민들이 조금씩 도움을 줘 서로 돕고 사는 마을을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을에 함께 살아오면서 서로를 돕고 산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밝은사회합덕클럽(회장 김봉균)
- 집짓기 봉사
합덕의소대, 합덕JC에서 집을 지을 때 필요한 지원금을 후원해 줘 집짓기 봉사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게 됐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십시일반 도움을 준 단체들에게 무척 감사합니다.
적십자사 당진지구협의회(회장 황선숙)
- 긴급구호물품과 이불세트, 옷가지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엄순호, 김기석 모자(母子)의 어려운 형편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화재로 인해 안정을 찾지 못해 불안해하는 모습들을 보며 더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합덕의소대(대장 박충식·이신화)
- 이불, 밥솥, 침구류
화재를 입은 지역 주민을 위해 대원들이 조금씩 정성을 모아 가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물품을 전달했습니다. 작은 정성이지만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웃에게는 큰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합덕읍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이형렬)
- 옷 수납장
지역의 기관·단체를 연계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을 도와 줄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했습니다. 많은 기관 및 단체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뜻 참여해줘 이웃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어 기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