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도 충청남도 시행 7급 행정직 공채 시험에 합격해 대호지면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한 뒤 30년 이상 공직생활을 해왔는데 막상 그만 둔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저와 함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동기들은 전부 대전시로 희망지원했지만 저 홀로 고향의 발전을 위해 당진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지금껏 당진의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신평면장 때에는 얼마 없던 체육회 기금 1억 원을 만들었고, 대전 지방국토관리청과 협의해 충남도 관리인 남원천 제방공사를 국가에서 직접 공사하도록 이끌어 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읍·면·동 폐지를 추진할 때에는 폐지에 따른 장관 결재를 앞두고 여론을 듣기 위해 당진에 온 내무부 직원과 담판을 지어 읍·면·동 폐지 부결에 산 역할을 했습니다.

문화공보실장시절 소난지도 의병총에서 20년 넘게 추모행사만 하는 것을 보고 제사만 지내지 말고 근거를 찾아보자고 제안함으로써 일본 총독부의 소난지도 의병항쟁 기록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기능보유자의 사망으로 생산이 중단된 두견주를 재생산 하고자 문화재청과 싸워 법에 1명만 보유자로 지정할 수 있던 것을 여러 명, 여러 단체가 함께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 면천두견주보존회가 지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기지시줄다리기 행사는 완전히 틀을 바꿔 세계화의 원년을 이뤄 냈습니다. 그리고 솔뫼 김대건 신부 생가를 복원했으며 기념관의 기틀을 만들었습니다.

지역경제과장 때에는 3년 동안 기업 600여 개를 유치함으로써 전국 지자체 중에서 가장 많은 기업을 유치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했고, 산업단지 약 1000만 평을 추진·개발했습니다. 일주일에 3~4번씩 수도권 기업을 찾아다니며 기업유치활동도 하면서 지역경제과장 시절 당진에 투자 유치한 금액이 무려 16조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30만 평 규모의 인천 청라지구의 주물단지가 당진으로 내려 오려는 것을 엄청난 압력을 받으면서 결국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환경피해가 우려되는 110개 업종은 입주를 금지시켜, 개별입지에서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업종은 근본적으로 제외시켰습니다.

한편 당진전통시장 재건축을 위해 2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고, 합덕전통시장을 재정비 하면서 어렵게 한우타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시청 앞에 서울 메이필드 호텔을 유치함으로써 내년에 착공이 예정돼 있습니다. 또한 천안 외투단지로 가려는 1조 원짜리 기업을 당진으로 끌어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30년 이상 공직생활을 하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공직생활을 이어왔습니다. 지역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던 것이 보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려대학교 행정대학원 재학 시절 졸업논문이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됐던 것과 3남임에도 불구하고 황토집을 직접 건축해 치매에 걸린 어머님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5년 동안 모셨던 것이 제 인생의 큰 보람입니다.

역동적인 도시 당진에 맞는 공무원상이 필요하고, 행정조직도 역동적인 흐름에 맞춰 짜야하며 공무원들도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지역이 발전합니다.

당진시를 보면 한참 발전을 거듭하다 현재는 지역발전이 정체된 형국입니다. 지금 당진은 한 단계 도약을 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멈춰버릴 것이냐의 기로에 서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비록 퇴직을 하지만 지역발전을 위해 꾸준히 일을 하고자 합니다. 공직 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점도 있었고,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만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저 자신한테 내리고 싶고, 그동안 묵묵히 뒤에서 내조를 다해 준 아내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