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혹자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지만 정작 부지런히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한 명의 천재가 아닌 10만 명의 우리 이웃들이다. 별나지 않은 인생 속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특별함이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그를 만난 건 당진시 노인·장애인복지관의 북카페였다. 우연한 약속이었지만 그를 만난 장소만큼 당신의 삶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곳이 없었다. 제법 쌀쌀한 겨울 날 복지관 2층 복도에 마련된 이곳에 따뜻한 햇살이 함뿍 들어왔다. 조용히 책을 읽기에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책을 읽고 있던 조규령(읍내동) 씨 옆에 가지런히 목발이 놓여 있었다. 나이를 묻자 “그런 건 소용없다”며 “여든이 코 앞”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 나이 먹어서 공부한다는 게 부끄러워 나이를 밝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부끄럽다고 했지만 자신의 삶에 당당했고, 아름다웠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믿기 어려울 만큼 그는 참 고왔다.
불편한 다리… ‘그래도 감사’
“30대에 다리를 다쳤어요. 1t 트럭에 받혔는데 그때 제대로 치료를 못했죠. 복숭아뼈를 다쳤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십 수 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자꾸 아프고 몸이 이상하길래 대학병원에 갔더니 정강이 보조뼈가 으스러졌다더군요.”
조 씨는 가슴팍까지 전신깁스를 하고 재수술을 거듭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병상에 누워 잠들 때면 “하느님, 치료가 잘되게 해주세요. 하지만 내일 깨어나지 않게 숨을 거둬가 주신다면 더 좋아요”라고 기도했다. 긍정적인 그 였지만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던 날들이었다.
다친 다리를 너무 오랜 시간 방치한 탓에 결국엔 목발신세를 질 수 밖에 없게 됐다. 몇 년 전엔 빙판길에 미끄러져 또 다쳤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감사했다.
“아예 걸을 수 없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저는 불편하긴 하지만 운전도 할 수 있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어요. 이 정도만 한 것도 감사하죠.”
“눈 침침해도 책은 잘 읽어”
젊은 시절엔 서울에서 의상실을 운영했다. 남편을 따라 당진으로 내려온 뒤에도 ‘서울의상실’을 30년 가까이 운영했다. 기성복이 많은 요즘에는 의상실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동안 수많은 손님들의 몸에 맞는 세상에 하나 뿐인 옷을 직접 만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시력이 자꾸 떨어져 더 이상 옷을 만들지는 못해도 책 읽는 것은 문제없단다.
거의 매일같이 노인·장애인복지관에 나와 북카페에서 책을 읽는 조규령 씨는 “눈이 침침해 옷은 못 만들어도 책은 잘 읽는다”며 “그동안 남편 뒷바라지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내 생활을 하지 못했는데 늦게나마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독서뿐만 아니라 그는 복지관에서 하는 영어수업을 1년 째 수강 중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늘 하고 싶던 영어공부를 이제라도 마음껏 할 수 있어 기쁘다. 마음이 복잡한 날엔 붓을 잡고 집중해가며 서예를 한다. 서예만큼 잡념을 잊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게 없단다. 장애와 나이는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하루하루 감사할 뿐이다.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뒤돌아 지나온 인생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커요. 부모와 남편, 자식들을 위해 살았지 오로지 날 위한 삶은 없었구나 싶어요. 젊었을 땐 자선사업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살지를 못했네요. 만일 그 시절 여력이 돼서 공부를 더 했다면 세상에 애달픈 이들을 위해 헌신봉사하면서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세월은 참 무심히 흘러갔다. 일상에 치여 살다보니 휙 하고 불어오는 바람결에 날아간 듯 시간이 지났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서 이제 여성들도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면 괜히 부럽기도 하다. 그래서 조규령 씨가 더 열심히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끊임없이 배우고, 책을 읽는 것은 제게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준다”며 “배울수록 삶의 값어치를 깨닫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제가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 수 있겠어요. 다만 바라는 건 자식들 모두 잘 커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지키며 도덕적으로 살길 바랄 뿐이죠. 제 남은 인생은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