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들강문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우강면 내경리. 평야를 옆에 두고 길게 늘어선 벚꽃 길가에 예사롭지 않은(?) 집 한 채가 있다. 벽면엔 시 한 구절이 쓰여 있고,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엔 몇 그루의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높게 뻗었다. 그 길을 지나면 ‘밥이 하늘이다!’라고 적힌 밥알을 꼭 닮은 돌이 세워져 있다. 마당과 집 구석구석에 독특하게 생긴 돌과 조각, 그리고 풀 한 포기까지 제각각 사연을 담아 이야기 거리가 한가득이다.
이른 모내기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그 집에 최중화(49) 씨가 살고 있다. 지역에서 보기 힘든 젊은 농부다. 집 곳곳에 새겨진 시가 집주인의 마음을 짐작케 했다.
트랙터 끌고 전국일주
“할아버지가 논에 나가실 때마다 늘 따라 나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렇게 어깨 넘어 배우던 농사일을 여태하고 있죠. 농사 짓기 위해 고등학교도 일부러 농고에 진학했고, 대학에서도 농업을 전공했어요.”
뼛속까지 농민인 최 씨는 이 길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농사를 짓는다. 쌀 미(米)자를 풀면 팔십팔(八十八)이되듯, 옛 어른들은 농사를 준비하고 볍씨를 뿌려 싹이 트고 자라 쌀을 얻기까지 88번의 손길이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정성을 담아 최 씨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최 씨에게 농사는 당연히 이어가야 할 가업이어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농사를 지어왔다. 그가 돌에 새긴 시처럼 농부로 산다는 건 때론 힘들고 서러워 눈물 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 백성에겐 밥이 곧 하늘이다)’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산다.
최 씨는 “‘밥이 하늘이다!’라고 새겨 집 입구에 세워 놓은 건 힘들 때에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며 “농민으로서 마음에 중심을 잡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농업·농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트랙터를 끌고 전국 일주를 하기도 했다.
“누군가 가업 이었으면”
그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건 다름 아닌 가족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대가 한 집에서 대를 이어 살았다. 지금은 할머니·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떠나셨지만 그 자리를 나무들이 대신하고 있다. 두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내가 시집왔을 때,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심은 나무까지 앞마당에 나무들은 또 하나의 가족을 이루며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농사에 대한 애착만큼 남다른 가족애를 자랑하는 그는 내심 두 아들 중 누군가는 가업을 이어 농사를 짓길 바란다.
최 씨는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들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농사에 애정을 갖고 이를 지켜갈 사람에게 농업을 꼭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 없는 대한민국은 상상할 수 없다”며 “시대와 세대에 맞는 농업을 일궈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햅쌀 수확을 위해 이른 모내기를 했어요. 보통 때 같으면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버지 차례상에 햅쌀을 올리려고 농사를 짓는데, 올해에는 세월호 참사로 바다 속에 가라앉은 아이들을 위해서도 이 쌀을 쓰고 싶네요. 많은 사람들이 ‘밥심’으로 기운 냈으면 해요.”
■최중화 씨의 블로그
blog.daum.net/bonanza6646
이 땅에 농부로 / 산다는 거 때론 힘들고 / 서러운 날들도 눈물 날 것 / 같은 일들도 많지만 / 한 술의 밥에 행복을 / 느끼고 즐거워 하는 / 이들이 있어서 / 난 오늘도 삽사리 / 복실이와 / 삽 어깨에 메고 / 논으로 간다
최중화 <농부>
>>편집자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고 세상을 알고 싶었다. 혹자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지만 정작 부지런히 세상을 움직이는 건 한 명의 천재가 아닌 10만 명의 우리 이웃들이다. 별나지 않은 인생 속에 누구도 살아 보지 않은 특별함이 있고, 평범한 일상 속에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들의 소박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제, 당신의 삶을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