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경1리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고래탑
▲ 내경1리 마을회관 앞에 세워진 고래탑

내경리(內鯨里) 지명은 고래가 조수를 따라 들어왔다가 죽은 후 그곳에 제방을 쌓은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내경리는 오래전부터 고래가 많이 발견된다고 하여 ‘고래원’이라고도 불렸다. 방조제가 생기기 전 내경리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었는데 조수 차가 굉장히 커서 물이 빠지고 난 뒤 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바닥에 남아 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다에서 고래가 떠밀려 와서 마을 사람들이 잡아먹었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을의 청년들이 하나둘 병을 얻거나 사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고래의 원한이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고 생각해 고래의 원혼을 달래고자 제사를 지냈고,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을 따라 고래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기고 1993년 마을회관 앞에 고래탑을 세웠으며, 주민들은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고래탑제를 지내기도 했다.

바닷물이 드나들던 1970년 전까지 마을에는 주로 농사를 지으며 부업이나 소일거리로 물고기를 잡는 주민들이 있었다. 갯벌에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는 개막이나 전마선과 같이 작은 배를 이용해 한철 물고기를 잡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내경1리 마을회관에서 직선거리로 약 900여m 떨어진 송본원장들 부근에 갯둑말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곳 개둑말 해안가 제방에 새우젓배가 정박했다고 하나, 박권옥 내경1리 노인회장의 기억에는 없다. 현재 갯둑말에는 두 가구만 남아 있다. 1960년대 항공사진에서는 갯둑말에 열 가구 남짓이 열촌을 이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갯둑말에는 새우젓배가 안 들어왔어요. 그런 건 들르지도 않고 교통수단으로만 이용한 배가 한 대 있었으니까. (그럼 갯둑말이란 건 독개나루터 부근의 마을을 말하는 거군요) 그 동네, 거기에 우리 부락에서 한 십여 채가 살았지. 근데 지금은 이제 다 이사 가고 거기 다 빈집 터만 남았어요. 그러고 지금 두 집이 살아요.”

우현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