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교 1리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는 신암사(주지 석일운)에는 인물, 전설 등이 다양하게 전해진다. 고려 충숙왕 때 능성 구씨 4손인 구예의 부인 신 씨가 남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3년간 시묘살이 후 부처님을 모시기 시작한 것이 신암사의 유래라고 전해진다.

신암사는 말 그대로 신 씨 부인이 지은 절이라는 뜻이다. 신암사는 처음에 구룡사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가교1리 구자국 노인회장에 따르면 아홉 마리의 용이 가교리 지역을 수호해 주고 있다는 뜻이지만 구룡사로 불리던 명확한 자료를 본적은 없다고 한다.

베풀어 가교리 터 받다

능성구씨 일가가 가교 1리에 자리를 잡게 된 배경에도 이야기가 전해진다.

구예가 원나라에 가던 길에 목숨을 끊으려는 자를 만난다. 그는 관아에서 세를 관리하는 자로 돈 관리에 문제가 생겼으나 이를 해결할 길이 없어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돈을 주어 그 사람을 살려 보낸다.

이후 그가 다시 구예를 찾아와 은혜를 갚고 싶다 말해 능성 구가의 종으로 들어오게 되고 풍수지리에 능했던 그는 능성 구가의 터를 잡아주겠다고 간청한다. 그는 천지인(天地人)의 기운을 잘 살펴 지금의 가교리에 터를 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곳에 터를 잡은 뒤 능성 구씨는 높은 벼슬에 오르기도 하고 자손 번창 등의 호기를 누렸다고 전해진다. 구자국 노인회장은 “선조 1592년 이전의 지도에도 규모가 큰 편이 아닌 신암사가 표기 돼있다”며 “이것으로 그 당시 능성구가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가교1리 구자국 노인회장

“조상의 얼 깃든 가교리”

구자국 가교1리 노인회장은 능성 구씨의 일가로 일생을 가교리에서 살아왔다. 젊은 시절엔 성씨나 마을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의 중요성을 느끼게 돼 서울 규장각에 있는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관련 자료들의 복사본도 소장하고 있다.

구 노인회장은 “어린 시절엔 신암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아주 어렸을 때 보수공사를 하는 신암사를 지켜본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옛날엔 신암사가 위치한 곳의 반대편 산에도 절이 하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가교리는 능성 구씨의 집성촌이고 조상들이 대대로 닦아 오신 삶의 터전입니다. 앞으로도 충실히 가교리를 지키겠습니다.”

편집자주>>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수많은 전설들이 전해진다. 스쳐지나가는 고개, 바위, 길 하나에도 지역의 역사가 담겨 있고 숱한 사연이 있다. 하지만 지역의 전설들은 당진의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자리를 잃고 사라지고 있다. 이번 기획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고, 많은 이들에게 지역의 이야기를 전달해 지역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자 시작됐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