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오래전부터 용두리에는 용이 두 마리 살았다. 이 용들은 마을 사람들이 풍년을 맞이할 수 있도록 비를 내리고 날씨를 좋게 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용을 존경하고 신으로 모셨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산에서 나무를 하던 노인이 중국에서 온 용들이 용두리의 용들을 몰아낼 모의를 하는 것을 듣고 마을 사람들과 용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마음씨 착한 용두리의 용들은 나쁜 용들과 살고 싶지 않다며 이곳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용들은 말을 믿지 못하고 몰래 공격을 시도한다. 그 순간 난데없이 광풍이 불고 벼락이 떨어지더니 중국에서 온 용들의 허리가 두 동강이 났다. 지금도 용두리에는 허리가 끊어진 산이 있으며 그 당시 벼락에 맞은 용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용두리에는 용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마을에 30m 정도의 낮은 언덕이 용머리 모양이기 때문에 지역명이 용두리로 불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주민들은 이 언덕을 ‘용머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전에는 용의 기운으로 마을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오기도 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왜구들이 용두리 뒤편에 수로를 내는 바람에 마을에 좋은 기운이 끊어졌다. 또한 수로를 놓으면서 마을에 있던 커다란 은행나무도 잘라 서 지금은 그 위치만 알 수 있다.
고대 용두리 김동원 옹은 “지금껏 은행나무가 잘리지 않고 있었다면 마을을 대표하는 나무가 됐을 것”이라며 “수로를 만든 위치가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용의 머리를 끊은 모양세여서 용이 주는 좋은 기운이 막혔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거북산과 마주보는 용두리
용두리는 지형상 우두동이 마주보고 있는데, 용두리에는 용이, 우두동에는 거북이가 살고 있어 서로 티격태격하며 살아 마을 사람들 간의 사이도 좋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내려오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면 용과 거북이도 덩달아 으르렁 거리며 서로를 견제하곤 했다고.
김동원 옹은 “채운교가 생기기 이전에는 강 때문에 마을 사람들 간의 거리가 더 멀어 그런 이야기가 전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김동원 옹
“용에게 제사 지내기도”
“용두리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용에 얽힌 전설을 많이 들었죠. 용두리 주민이라 그런지 별 감흥 없이 용머리를 지나 다녔는데, 가끔 다른 지역 주민들이 와서 꼭 용머리같이 생겼다고 놀라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마을의 수호신인 용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요즘엔 제사를 지내진 않아요. 가끔은 수로가 용의 기운을 끊지 않았다면 마을이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해요.”
편집자주>>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수많은 전설들이 전해진다. 스쳐지나가는 고개, 바위, 길 하나에도 지역의 역사가 담겨 있고 숱한 사연이 있다. 하지만 지역의 전설들은 당진의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자리를 잃고 사라지고 있다. 이번 기획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고, 많은 이들에게 지역의 이야기를 전달해 지역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자 시작됐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