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모 씨는 정미초등학교, 당진중학교, 목포고등학교를 나와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다. 학창시절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목회자의 길을 가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해왔던 신학과와 현실은 달랐다. 그는 입대를 선택했고, 방황의 시기를 거쳤다. 제대 후 신학과를 졸업했지만 결국 목회자의 꿈은 접게 됐다.

이 후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던 중 마침 동아제약에서 영업직 사원을 구한다는 것을 알고 지원서를 넣었다. 면접을 보러온 이들은 다들 약대, 의대를 나온 사람들뿐이었다. 면접 당시 들었던 질문은 ‘신학대학을 나왔는데 물건을 팔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당황할 법도 하지만 사실 그가 예상한 질문이었다고.

“면접관이 예상했던 질문을 했죠. 저 역시도 저에게 몇 분의 시간을 줄 것인지 묻고 차분하게 판매에 대한 제 생각을 밝혔어요.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입사 전 45일간의 교육이 예정돼 있었다. 교육을 버티면 어디에서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던 그지만 교육을 마치고 나오자 어느 정도 그 말이 이해가 됐다.

“학창시절에 알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너 엄청 변했다’에요. 사실 이전에는 사람들과 눈만 맞춰도 얼굴이 빨개지곤 했거든요.”

판매원의 인생도 쉽진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일화 중 하나는 모 기업 회장 댁에 업무차 방문했을 때다. 초등학생 정도 되는 회장의 아들에게 인사를 하자 아이가 뛰어가며 ‘아빠 약장수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당시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그렇게 동아제약에서 부장까지지내며 경력을 쌓자 MBC 영업국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23년간 일하던 직장을 떠나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지만 동아제약의 광고도 함께 관리하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승낙하고 MBC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 당시 광고 시장의 규모가 220억 원이었습니다. 비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학을 전공했지만 판매업이 의외로(?) 잘 맞았던 그는 적대적인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을 때 가장 보람이 컸단다. 그가 광고 수주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대한항공 광고를 수주했을 때다.

“대기업에게 광고를 받기 위해선 프레젠테이션과 광고 컨셉 등을 미리 준비해서 그 회사의 회장, 전무, 이사들 앞에서 발표해야 해요. 많으면 7~8개의 회사가 경쟁에 참여하기도 했죠. 치열한 경쟁 속에 지금도 대한항공 광고를 수주한 것을 생각 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우연히 천직을 만나게 된 그는 MBC 광고국 상무를 거쳐 전무이사직까지 맡다가 퇴직한 후 2005년 11월 고향인 정미면 매방리로 호적을 옮겨 현재는 관상조 농원 ‘새소리’를 운영하고 있다.

“당진에 온지 어느새 9년이 지났네요. 지금은 주민자치위원을 맡아 정미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향인 당진시와 매방리가 더 좋은 고장이 됐으면 합니다. 저도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