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결혼(結婚)이란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 또는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로 혼인관계를 맺음이라고 했으며 화혼(華婚)은 남의 결혼을 아름답게 일컫는 말이다. 또는 결혼을 경사스럽게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일부 사람들은 결혼은 남혼이고 화혼은 여혼이라고 한다.
혼인을 하면 부부(夫婦)는 일신(一身)이 된다. 동양에서는 아름다운 말로 비익조(比翼鳥)라고 했다. 비익조란 상상의 새로 암컷과 수컷이 각기 눈과 날개가 하나씩 있어 둘이 몸을 합쳐야만 두 눈과 두 날개가 되어 날 수 있게 된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연리목(連理木)이란 말도 있다. 뿌리가 각기 다른 두 나무가 줄기에서 합쳐져 한 몸이 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원앙은 암수가 정조를 지키며 떨어지지 않는다하여 신혼부부의 이불과 베개에 이를 수놓아 원앙금침(鴛鴦衾枕)이 생겼고 기러기가 한 번 정한 짝은 바꾸지 않는다고 하여 혼례 때 기러기를 드려 불변의 약속을 징표로 전안(奠雁)이란 예(禮)가 생겼다.
지난 1월 24일 외손녀 혼인식이 있었다. 외손녀가 판사로 수원지원에 근무하기 때문에 서울중앙법원 별관 예식장에서 거행하게 되어 참석차 식장에 갔더니 접수석과 대합실에 마련된 봉투함에는 결혼(結婚) 또 한 봉투에는 화혼(華婚)이라고 한문으로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1920년 4월 28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조선조의 왕세자(往世子) 이은(李垠)과 일본왕족 마사꼬(方子)의 일본식 결혼식(結婚式)이 있었다. 일본식으로 행해진 예식은 일본 동경에서 거행하고 피로연(披露宴)을 베풀었다. 펼쳐서 노출시키는 잔치라는 뜻의 피로연과 결혼은 우리에게 없던 일본말이다. 피로연은 일본인들이 결혼을 친척과 친지에서 널리 알려 이를 공인 받는 과정으로 하나의 예식절차와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에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들어온 후 숙종 때 대제학 이재가 주자가례를 기본으로 삼고 상례비요를 참작하여 사례편람(四禮便覽)을 저술하여 관혼상제의 사례를 자세히 다루었다.
위와 같이 국가에서 관혼상제에 관하여 국민에게 홍보하여 오백여년 동안 시행해 온 가례를 일조에 바꿔서는 안 된다. 공자는 예출어정(禮出於情)이라고 했다. 예는 정, 즉 사람의 정서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형식보다는 인정과 감정이 우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본(本)은 정서라면 말(末)은 형식이다. 이것이 전도되어 형식 때문에 사람이 다쳐서는 안 된다.
혼인은 사회제도로써 보장되는 남녀의 계속적인 성적결합관계 또는 이 관계에 들어가는 법률행위로 법원은 재판규범에 의해 국민의 혼인에 대한 권리의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성한 법원 예식장에서 일본식 신조어인 결혼, 화혼, 피로연 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의 자존심을 잃은 행위로 깊이 자성해야 한다. 일제의 신조어인 결혼, 화혼, 피로연을 과감히 배척하고 유구한 역사 속에서 사용해온 혼인과 잔치라는 우리의 아름다운 말을 사용할 것을 만천하에 제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