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에 산사태만 50건, 농경지 수만평 자갈밭으로
농로·수로등 기반시설도 송두리째 무너져
개군이래 최대의 물난리를 겪은 우리지역은 합덕·우강을 제외한 전 읍면이 예외없이 큰 피해를 당했다. 특히 북부 산간지대인 정미면을 비롯 고대면, 대호지면과 송산면, 송악면 등이 산사태와 하천범람, 저수지 붕괴로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한창 이삭 팰 시기를 맞은 벼와 고추, 참깨 등 밭작물, 여름내 땀흘리며 수확해 건조장에 널어두었던 잎담배 등등 농작물 피해는 농민들의 가슴을 긁어 내리고 있다.
천의시장 장옥 6동 파손돼
영세상인들 “어떻게 살아가나...”
한숨만
수마가 할퀴고 간 9일 오전, 폭우만 내렸다 하면 침수되던 채운들은 여지없이 거대한 흙탕물 바다로 변해 있었다.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한그루와 전봇대만이 이곳이 뭍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뿐 어디에도 파릇한 벼포기 하나 나와 있지 않았다.
정미면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군도 1호선을 끼고 있는 봉생리에 이르자 지붕만 남은 채 주저앉은 집 한채가 심상치 않은 수해상황을 예고했다.
부지조성중 부도를 내고 수년째 방치되어 있는 두진산업앞. 산을 깎아내 부지만 조성해놓은 이곳에서 돌덩이와 자갈이 쏟아져내려 한 때 길이 막히기도 했다. 이곳은 95년 수해 때에도 무너져내린 바 있다.
1㎞나 갔을까? 천의2리에 이르자 산사태를 당해 가옥 반쪽이 완전히 잘려나간 참상이 또 펼쳐졌다. 집주인인 김종호(54세)씨는 흙더미에 깔려 숨졌다. 이 현장에서 마침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다. 자식도 없어 동네사람들이 치르는 장례는 썰렁하기만 했다.
정미면 소재지 천의시장. 말 그대로 이곳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폭우가 쏟아진지 1시간도 안돼 천의천이 범람, 장옥 처마밑까지 물이 차올랐던 것이다. 수십년전에 지어져 낡을대로 낡아있던 장옥은 밀려내려온 시뻘건 토사와 온갖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고 기둥이 무너져 파손된 장옥도 한 두채가 아니었다.
면사무소로 대피해 뜬눈으로 밤을 새웠던 시장주민들은 온몸을 진흙으로 맥칠한 채 복구의 손길을 바쁘게 놀리고 있었으나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일거리에 곳곳에서 한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철물점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80세 된 노인도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고 하시더라”며 “가뜩이나 시장도 쇠퇴해 하루 밥벌이도 어려운 마당이었는데 이런 난리까지 만나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하다”며 한숨 지었다.
천의시장 장옥은 이번 수해로 전체 20동 가운데 6동이 파손됐다. 또 정미면 복지회관 뒷산이 꼭대기부터 무너져 내려 회관앞 주차장에 세워 놓았던 차량 수십대가 파손됐다.
신시리·도산리 등도 저수지 제방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발생해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신시리에서는 산사태만도 무려 50건에 달해 농경지 6만여평이 매몰되거나 유실됐다. 게다가 저수지 제방까지 터져 피해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도로변의 전신주도 죄다 쓰러져 신시리는 폭우뒤 이틀간 암흑세계였다.
신시리장 강병년씨는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장비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주민들도 누구 할것없이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모르고 있는 채 망연자실해 있다”고 말했다.
버스길 끊겨 발묶여 숙원사업
이었던 포장도로도 잘려나가
정미면을 지나 지방도 647호선을 타고 대호지면으로 향했다.
장정리. 아스팔트길 곳곳이 패이고 주민들이 애써 가꾼 꽃동산, 연못이 있는 마을공원도 수마는 그냥 놔두질 않았다.
고갯길을 넘자 두명의 사망자를 낸 조금리 사고현장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산사태로 집이 완전히 무너져 80대 노인인 장용길·조한씨 부부가 숨진 곳이다. 이곳에 집이 있었던가 의심날 정도로 집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의 장례는 대호지면 복지회관에서 치러졌다. 외지에 나가 살던 자손들은 부모님이 참사소식을 전해듣고 달려와 빈소를 지키고 있었으나 어처구니 없는 사고에 모두 할 말을 잃은듯 했다.
그래도 동네 주민들이 각자 물난리를 겪었음에도 빈소를 찾아와 객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만드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훈훈한 이웃애는 여전했다.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했던 마중천 일대는 이번 수해로 여지없이 강타를 당했다. 마중리는 천주변 농경지는 물론, 하천다리가 밀려나가 버스길이 끊겨 주민들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수년째 숙원사업으로 꼽혀 지난해 간신히 일부가 포장된 군도 11호선 송전리 구간도 한 주민의 표현대로 ‘페인트도 마르기 전’에 이번 폭우로 절반가량 잘려나갔다.
끊어진 농로와 패인 하천, 자갈밭으로 변한 논·밭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였다.
윗마을은 산사태로,
아랫마을은 물난리로
고대면 항곡리. 항곡저수지 둑이 무너졌다. 폭우에 저수지 물까지 덮쳐 항곡리 일대 농경지가 전부 잠겼다. 무너진 둑 사이로 쉴새없이 물이 흘러내리고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홉골이라는 항곡리는 저수지 윗쪽 주민들은 산사태로, 아랫마을 주민들은 물난리로 피해를 입었다. 농사만 지으라고 절대 농지로 묶여있던 저수지 윗쪽 농경지는 이제 ‘밭도 아니고 논도 아닌’ 땅으로 변해버렸다.
항곡리 주민들은 항곡저수지를 애물단지로 여기고 있다. 삽교천 사업으로 쓸모가 없어진 저수지가 기어코 일을 냈다는 것이다. 낚시꾼들의 쓰레기만 고스란히 쌓여있던 저수지.
항곡리장 이봉우씨는 “물빠진 참에 아예 저수지를 없애야 한다고 주민들은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는 묘지 4기가 유실돼 후손들이 유골을 찾아 추스리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저수지 윗쪽 산사태 지역에는 수해를 입은지 사흘이 지나도록 장비동원이 안돼 7농가가 고립돼 큰 고충을 겪었다.
얼마전 공업용수관 매설공사가 진행된 고대 공설운동장앞 지방도 615호선은 아스팔트 밑 도로기층이 모조리 깎여 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으며 도로 군데군데가 폭격을 맞은듯 떨어져 나가 있었다.
공중에 뜬 농로, 길인지 다리인지
송악면 기지시로 가는 국도 32호선은 수자원공사가 공업용수관 매설공사를 위해 쌓아놓았던 직경 3m 가량의 흄관이 도로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시곡천을 따라 패이고 깎인 제방으로 농경지는 자갈밭으로 변했다.
송악면 가학리에 이르자 피해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수해복구공사가 이뤄졌다는 소하천의 콘크리트 제방조차 깎여 내려가 인근 농경지가 모조리 매몰됐다. 대성사로 가는 진입로도 끊겨 주민들은 나무를 얼키설키 엮어 다리를 놓았다. 포장된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농로도 기층이 전부 깎여 콘크리트만 남아 길인지 다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도로변에 논이 있다는 한 농민은 얼마전 가스관 매설공사로 도로변을 헤집어 놓는 바람에 토사피해를 크게 입었다고 호소해왔다.
출하 하루앞둔 닭 14만수 폐사
“어려운 시기 간신히 버텨왔는데”
전체 농경지의 80%가 침수피해를 입었다는 송산면.
명산리에서는 버스노선인 명산리 하천의 콘크리트 암거가 뚝 잘려나가 졸지에 버스길이 끊겨버렸다.
당산1리에서는 산사태로 흙더미에 깔려 사망한 최병순(65세)씨 집에 마을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너나 할것없이 논둑이 무너지고 물에 잠기고 피해를 입었지만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는 아무도 피해를 말하지 않았다.
“하늘이 한 일인걸.”
“사람도 죽었는디...”
“당진읍은 난리도 아니라매?”
지난밤 폭우도 아쉬운지 간간히 가랑비를 뿌려대는 궂은 날씨속에서 동네주민들은 이렇게 한마디씩 했다.
송산면 유곡리에 있는 그린육계단지에서는 복날을 앞두고 출하하려던 닭 14만마리가 출하 하루전 내린 폭우로 모두 폐사하고 말았다.
대표 이시용씨는 “사료값이 40% 올라 어려운 시기를 간신히 버텨오다 여름철 닭시세가 조금 나아져 위기를 넘기려나 했는데 이런 사태를 맞았다”며 “누구나 똑같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어느 정도 감내하고 최선을 다해 보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막막한 심정 뿐”이라고 말했다.
마리당 1,300원씩 계산해 이씨의 피해액은 무려 3억원에 이른다. 게다가 자동화 시스템인 각종 시설물도 수리에 들어가야 하는 등 재투자가 필요하나 자금사정이 밑바닥을 돌고 있다. 비록 상환기한이 남아있지만 육계단지를 조성하면서 융자받은 자금 8억8천만원도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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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당진을 복받은 땅이라고 했던가. 사상 유래없었던 이번 수해는 주민들에게 그런 회의를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참혹했다. 잠기고 뒤틀리고 끊어지고 부서져버린 삶의 터전과 생산의 현장들. 그러나 망연자실했던 순간을 금새 잊고 주민들은 진정으로 복받은 땅을 ‘만들기 위해’ 다시 일어서고 있다.
진흙탕으로 범벅이 되었던 천의시장도 수해 3일째 되던 날엔 뽀얀 아스팔트 길을 드러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