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탁에 내가 좋아하는 과일 샐러드가 나와 맛나게 먹고 있는데 엄마가 물으셨다.

“아들! 우리나라 다문화 형태는 샐러드 볼일까 아님 용광로일까?”

“아니, 무슨 다문화에 샐러드 볼이 있고 용광로가 있어요?”

“ 엄마가 설명해 줄게. 국가라는 큰 그릇 속에서 샐러드 같이 여러 민족의 고유한 문화가 섞여 있는 것은 샐러드 볼의 형태고, 여러 민족의 고유한 문화가 지배적인 문화의 영향으로 융화되면서 변화하는 게 용광로 형태야.”

엄마는 다문화 교육에 관심이 많아 그와 관련한 연수를 들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라며 웃으셨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세계 유일의 단일민족 국가임을 최고의 자부심으로 여기며 혼혈인들을 차별하고 다문화 가정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 수가 100만 명을 넘은지 오래이고 전체 결혼 중 외국인과 결혼하는 비율이 10퍼센트가 넘는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참 많은 다문화 가정이 있구나 싶었다. 이모부가 계신 양돈농장에서 일하는 네팔 직원들, 우리가 자주 가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중국 아줌마네, 곧 결혼하게 되는 사촌 누나는 미국인 남편감의 사진을 보내 왔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내겐 소중한 우리 동네 다문화 가정의 어린 친구들이 있다. 바로 영서와 은서 남매다. 다섯 살, 세 살 때 만나 이젠 일곱 살, 다섯 살이 된 귀여운 아이들이다.

베트남 엄마를 둔 아이들이 동네에 친구가 별로 없어 심심하게 지낸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엄마가 먼저 우리 집에 불러와서 함께 놀아주자고 하셨다.

알고 보니 두 아이의 아버지는 국어 교사인 우리 엄마의 제자여서 우리 가족은 더 각별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게 되었다. 마침 베트남에서 오신 아이들의 어머니는 한국어능력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라 엄마는 그 분의 공부를 돕고 나는 다섯 살 된 남자 아이를, 할머니는 세 살 난 여자 아이를 각각 담당하기로 했다.

매주 일요일 오후가 되면 세 명의 반가운 손님이 집에 찾아와 엄마는 한국어 공부, 나는 장난감 놀이,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며 함께 놀아주기를 하였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나는 그들이 가족과 다름없이 느껴졌고 어린 늦둥이 동생이라도 생긴 것처럼 영서가 귀엽고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기특했다. 은서는 할머니 옆에서 그림을 그리다 잠들기도 하고 엄마는 베트남 어머니가 하도 학습 의욕이 강해 오히려 엄마가 끌려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문법과 논술에서 아들인 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칭찬을 하셔서 은근히 의식을 하게 될 정도였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베트남 어머니는 원하던 최고 단계의 한국어능력 시험에 합격하셨다. 베트남 어머니가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남매를 제대로 교육하고 또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외국인 엄마들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여 자녀에게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다 보니 자녀들이 언어적 발달 장애를 겪게 되고,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소외되며, 학습부진아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다문화에 대한 의식이 변하였다 해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향해 가슴을 활짝 열어놓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상처받고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치원에서 학부모 모임을 해도 어쩐지 말을 잘 걸어주지 않고 왠지 모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는 그 어머니의 말씀 속에는 이방인의 쓸쓸함이 있었다.

해마다 늘어나는 다문화 가정의 국적에 따라 우리나라에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고 그들이야 말로 여러 산업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기피하는 어려운 일을 도맡고 있다. 또한 농촌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결혼할 여성을 찾지 못한 농촌 총각들의 배우자가 되어주며 사회의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이들을 위한 일이 곧 사회를 위한 일이 된다는 생각으로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 주고 또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나의 어린 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다문화 봉사의 시간을 통해 나는 세상을 더 큰 시야로 바라보게 되었고 우리 사회가 다문화 가족에 대해 더 포용력 있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샐러드 볼 속에서 함께 어울려 있으면서도 각기 제 맛을 잘 살려 재료들이 최고의 맛을 내는 샐러드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