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5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24일, 새마을운동 당진시지회(지회장 정완옥, 이하 새마을지회) 회장단과 사무국 직원들이 지역에 살고 있는 참전용사 이재천(89·순성면 광천리) 옹과 민남수(73·면천면 삼웅1리) 옹을 위문 방문했다.

새마을지회 회장단은 이들에게 과일과 고기 등을 전달하고 전쟁 당시의 상황을 비롯해 이들이 살아온 지난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이란 요즘 젊은이들에겐 교과서에 나오는 먼 과거의 역사로 남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몸과 마음의 물리적인 상처로 남아 있다.

이날 전쟁을 겪어본 적 없는 이들은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켜준 어르신들에게 감사를 전했고, 전쟁을 겪은 이들은 역사 속에 잊혀 가는 노병을 찾아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인터뷰] 이재천 옹 (순성면 광천리)

전쟁터에서 보낸 20대 청춘

25살의 나이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재천 옹은 다른 병사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마을에서 3명을 제비뽑기로 선출했는데 번호표 2번을 뽑아 참전하게 됐다. 양구·화천·인제 등 중부전선에서 군 생활을 한 그는 휴전이 된 뒤에서야 31살에 제대할 수 있었다.

이재천 옹은 “다른 사람들처럼 죽었을 수도 있었다”며 “요즘 젊은이들은 그 당시의 상황을 전혀 몰라 안타깝다”고 전쟁 당시를 회상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3.15 부정선거, 4.19 혁명 등을 겪은 그는 젊은 시절 야당에서 활동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긴장이 팽팽했던 냉전시대를 살아온 그는 멋모르고 참여한 좌익단체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창고에 갇히기도 하고, 옆구리까지 총부리가 들어오는 경험도 했다. 군의원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던 이재천 옹은 “바른 사회를 위해서는 야당이 없어서는 안 된다”며 “하지만 명분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하는 지금의 야당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인터뷰] 민남수 옹 (면천면 삼웅1리)

이슬비 오듯 내리던 고엽제

민남수 옹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을 당시 그는 불과 24살의 앳된 청년이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가 외화를 벌어오던 때였다.

백마부대 출신인 민남수 옹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베트남으로 실려가 39개월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전투에 직접 투입됐던 그는 밤하늘에서 떨어지던 이슬방울이 고엽제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밤새 매복을 서면 이슬비 오듯 머리 위로 제초제가 뿌려졌어. 그땐 그게 고엽제인 줄도 몰랐지.”

숲이 울창해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던 연합군은 밤마다 고엽제를 뿌렸다. 당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많은 이들이 당시에 살포된 고엽제 피해로 인한 후유증을 수십년 째 앓고 있다.

민남수 옹은 “고엽제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사람은 걷지도,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라며 “나 역시 혈압이 높고 다리 관절이 성치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