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망조가 든 것은 너희 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독립운동에 참가하면서부터였다.”
이범일(90) 옹이 집안 어르신들에게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어오던 이야기였다. 대호지면에서 손꼽히던 명사가 한 순간에 몰락한 계기는 바로 당진의 대표적인 독립만세운동인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이었다.
유생들 고향에서 만세운동 계획하다
1919년 고종황제의 인산일을 맞아 서울에 다녀온 당진지역 유생들은 당시 일어났던 3.1만세운동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은 고향에서도 이러한 독립만세운동을 하기로 계획했다.
이 과정에서 남상락 선생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서울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램프 속에 숨겨오는 기지를 발휘, 3월 말 이인정 대호지면장과 협의를 거쳐 독립만세운동을 함께 추진하기로 한다. 며칠 동안 애국가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며 치밀하게 준비해, 4월 4일 아침, 로 수선을 명분으로 마을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모은 이들은 대호지면사무소에서 이인정 면장의 연설과 남주원 선생의 독립선언서 낭독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시작해 사람이 많이 모이던 정미면 천의장터까지 행진한다. 1000여 명의 군중이 벌인 평화로운 만세운동에 천의주재소 일경들이 군중을 자극하면서 결국 천의주재소가 불에 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만세운동의 주역 중 하나인 당시 대호지면장이 바로 이범일 옹의 선조인 이인정 선생이다. 그 외에도 유생인 남주원 선생 역시 대호지면의 부호였지만, 독립만세운동 이후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재산을 모두 소진하게 됐으며, 지역주민들 역시 광복이 될 때까지 수많은 차별을 겪었다.
이러한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은 국내에서 유래 없이 민과 관, 지식인들이 힘을 합쳐 치밀한 계획 하에 일제의 탄압에 맞서 전개했던 독특한 항일독립운동으로, 100여 명 이상의 독립유공자가 서훈을 받았다.
끝끝내 보존한 만세 참가자 명부
“독립운동하다 옥고 치룬 분들, 그분들 여기 다 있어. 절대 이거 없애지 마라.”
독립유공자 서훈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문서는 당시 옥고를 치룬 분들의 명단인 ‘범죄인 명부’였다. 워낙 마을 사람들이 고초를 겪은 데다, 광복 이후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해 독립운동 유공자를 신청하기 쉽지 않았지만, 당시의 범죄인 명부가 보존돼 있어, 이를 증거로 100여 명 이상의 주민들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었다. 정성환(86) 옹은 1960년대 당시 행정문서 간소화 조치로 수많은 옛 서류들이 폐기됐던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거는 우리 민족에 있어 중요한 문서이기 때문에 없애서는 안 된다. 내무부장관 지령이라도, 누가 뭐라 해도 없애서는 안 된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려 보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성환 옹은 당시 독립만세 이후 주민들의 어려운 삶에 대한 이야기도 어릴 적부터 들어왔다고 했다. 기미년 만세통에 집이 완전히 거덜 났다. 또 피신 다니느라 농사를 몇 년씩 짓지 못해 식구들 모두 거지가 됐을 정도였다고. 뿐만 아니라 경찰서에서 구류를 살아가면서 숱하게 매를 맞은 일 등 당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추모탑 건립·심포지움 개최 등
당진시는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이 오는 2019년 100주년을 맞으면서, 해당 지역에 대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600여 위의 순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창의사를 건립하고, 천의주재소 자리에는 4.4독립만세운동 기념비를 세워 조상들의 애국정신과 넋을 기린 바 있다.
당진시는 이번 2019년 100주년을 기념해 만세운동이 시작된 대호지면과 만세운동이 정점에 이른 정미면 두 지역을 대상으로 추모공원 조성, 야외 전시공간 마련, 추모탑 건립 등 시설을 조성하고 기념행사 개최 및 학술 심포지엄과 책자 발간,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을 계획하고 있다.
※자료제공: 당진시 지역자원조성과 전통문화세계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