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에 벼가 자라나고 있다. 지난 봄 가뭄도 불구하고 벼는 농민들의 땀방울 먹고 자라 이삭을 내밀며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하지만 농민들은 추수철마다 겪고 있는 쌀 판매 걱정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 같은 고민은 농협 조합장과 쌀 판매 담당직원들도 똑같을 것이다. 정부가 쌀 관세화를 선언하면서 저율할당관세 시장접근물량 40만8700t에 대한 수입의무가 폐지될 것처럼 홍보한 것과 다르게 5%의 관세로 계속 수입할 방침이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7월 31일 밥쌀용 쌀 3만t과 가공용 쌀 1만1000t을 수입해 연말쯤 방출시킬 계획이다.
시위에 나선 농민들은 정부의 밥쌀용 쌀 수입에 침묵하는 농협에 대해 “쌀값이 미국쌀값으로 폭락하면 농협도 해산시켜야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농민회원들은 언제까지 정부와 중앙회 눈치나 보는 관치 농협으로 조합과 농민들의 피해에 침묵하고 있을 것이냐는 것이다.
특히 국내 쌀 생산량에서 1∼2위를 다투는 당진시의 농민회원들이 40여 명이 이번 집회에 참석할 때 버스에 찾아온 농협 조합장은 없었다. 선거 때 새벽부터 농민들을 찾아다닌 것과는 사뭇 달랐다. 당진시 농민들은 지난해에도 쌀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던지라 정부의 밥쌀 수입에 근심이 깊다. 특히 수년전부터 당진지역 농협과 농협도정 공장들은 쌀 유통시장에서 수입 혼합미와의 가격경쟁은 물론 타지방 저가미로 인한 쌀값폭락과 판매부진으로 십 수억 원씩 적자라며 수매가 인상에 소극적이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모 농협 쌀 도정 담당자는 “농민들의 선거로 선출되는 조합장들이 울며 겨자 먹듯이 농민들의 인상요구를 무리하게 들어주다보니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쌀값 하락의 근본원인이 쌀 수입에 의한 공급과잉으로써, 수매가가 생산비 보장 기준으로 책정돼야 한다’는 당진시농민회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때문에 당진에서 쌀은 한우와 더불어 농민들의 주요 소득원으로 해마다 수매가 결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렇듯 수입쌀로 밀려난 우리 쌀은 농협에서도 푸대접을 받고 있다. 지금 농협 하나로마트에는 원료가 수입쌀로 된 가공품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가격 때문에 국내산쌀 제품을 취급할 수 없다는 게 농협의 변명이다. 그러한 농협의 논리라면 가격이 싼 수입 농축산물로 마트를 채워놓고 조합장들과 직원들도 값싼 나라에서 수입하는 게 좋다는 논리인가?
농협이 이렇듯 정체성을 상실한데는 조합장을 선출하는 농민 조합원들에게도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그래서 농협이 농민들의 자주적인 조직이고 농민들이 직접 선출한 조합장이라면 당연히 정부의 쌀 수입에 대해 명운을 걸고 투쟁해야 한다.
지난 3월 11일 선거 당시 당선된 조합장들은 물론 모든 후보들이 쌀 판매확대와 소득보장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지금부터라도 농민 조합원과 농협이 공동으로 쌀 수입을 저지시켜 농민들의 생존권과 적자경영을 막아내야 한다. 이것은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때부터 밥쌀용 쌀 수입까지 제대로 반대투쟁 한 번 못해보고 농협이 농민들 등 뒤에 숨어온 것에 대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돼야 한다.
농민들은 1200개 지역농협은 물론 대기업 재벌과 비교될 만한 위력을 갖춘 농협중앙회가 나선다면 밥쌀 수입을 막는 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현재까지 정부는 수요처가 있는 한 계속해서 밥쌀을 수입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전국 쌀생산자협회 등은 오는 11월 서울에서 농민 10만 명이 운집하는 집회를 열고 밥쌀 수입을 결사저지 하기로 결의했다. 따라서 이제는 농협이 적자를 해결하고 농민 조합원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