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 시험이 다가오고 있다.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던 때에는 왜 그리 추운지 사람들이 ‘입시한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험 후에는 꼭 ‘막노동하며 서울대 수석 합격’, ‘30년 대입사상 첫 만점자 탄생’, ‘75세 박모 할머니 아름다운 수능 도전’ 등 훈훈한 내용의 수능 미담(?)이 보도되기도 한다. 아마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시험이고, 인생의 좌표를 결정짓는 첫 시험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우리나라 대학입학시험의 명칭과 유형별 특징에 대해 자료를 통해 살펴보니 5가지 정도로 구분이 가능했다. 제1기는 입학고사(1945년~1953년, 1955년~1961년, 1964년~1968년)로 3번의 시기에 대학별 단독시험으로 대학을 가던 시대다. 입학고사는 대학에 재량권을 전적으로 보장했다. 입학고사는 우리나라 각 대학이 독자적으로 선발고사를 실시, 고교 졸업 자격증만 있으면 누구나 입학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입시 관리가 철저하지 못하고 대학 간의 시험기준이 모두 달라 대학생의 자질격차로 대학 교육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제2기에는, 대학입학국가연합(자격)고사(1954년, 1962년~1963년)라는 시험을 치루고, 본고사를 병행하던 제도가 실시됐다. 이는 국가가 자격고사라는 명칭으로 개입하던 시기다. 제3기는 예비고사(1969년~1980년) 시기로 대학입학 수험생들이 예비고사를 공통으로 시험 본 뒤, 예비고사 점수를 바탕으로 희망하는 대학에 각자 지원해 한 번 더 본고사를 대학별로 치루는 방식으로 대학입시가 이뤄졌다. 하지만 예비고사는 일부 사립대학이 입시제도의 결함을 악용, 정원 외 학생 및 청강생 등을 마구 뽑아 대학교육을 흐리거나 사학 부실이라는 폐단을 낳았다.

제4기는 학력고사(1981년~1993년) 시기다. 체력장이 있던 시절의 대학입학시험으로 340점 만 점으로 단 한 번의 학력고사를 치루고 점수에 맞춰 대학을 가던 입학시험제도였다. 이 시기에는 고교내신제, 논술고사, 면접 3가지 방식을 연차적으로 각각 적용했다. 학력고사는 전두환 정권 당시 고액 과외 등의 폐단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 만들어진 제도였다.

제5기는 대학수학능력시험(1994년~현재)인데, 대학별 본고사, 내신성적, 면접을 모두 병행해 평가하는 것으로, 수험생들로 하여금 다각적이고 다면적인 종합평가를 하고자 하는 제도다. 대학 입시 위주로 이뤄지는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도입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현재 수능시험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괴리가 너무 커서 오히려 과외와 재수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해방 직후부터 1953년까지 시행된 대입제도는 사실상 대학에 맡겨둔 자율체제였다. 진학자보다 대학정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입제도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50년간 크게는 12회, 세부적으로 보면 무려 16차례나 바뀌었다고 한다. 평균 4년에 1번씩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이를 따라가느라 허덕였다.

일부 사립대를 중심으로 무자격자에 대한 입학 허가가 남발되고, 군대를 늦추기 위한 편법, 사학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부정이 난무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제도가 오락가락하면서 정권이 바뀌거나 사회변화와 이해관계에 따라서 수없이 바뀌었고, 현재도 바뀌어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국사와 영어 영역에 절대평가를 도입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원론적인 수준이겠지만 대학입학시험에 대한 몇 가지 해결책을 제언하자면 첫째,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판가름 되지 않도록 1년에 2~3차례 정도의 시험 기회를 줘야할 것이다. 둘째, 추운 날씨에 시행하지 말고 미국이나 선진국처럼 여름학기제 시행도 고려 해볼 만하다.

셋째, 대학입시 제도를 아무리 바뀌어도 사교육비 문제 해결이 안된다. 근본적인 사교육비 해결책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넷째, 획일적인 진학이 목표가 아니라 진로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해 학교교육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력경쟁과 학력위주의 편견을 과감히 버리는 사회적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 측과 정부 당국 간 학생 선발에 대해 주도권 다툼을 하지 말고 대학의 자주성과 자율성에 책임지도록 맡기는 방안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요즘 미국사회도 사교육비로 골치를 앓고 있다고 한다. 그 문제의 중심에 한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소도 웃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