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진역사문화연구소가 주관하고 당진문화원이 주최한 동학농민혁명 121주념 기념 학술대회가 지난달 21일 당진문화원 문화공연장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박맹수 원광대 교수가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을 주제로 동학사상에 대한 오해와 동학농민군의 도덕성 등에 대해 기조강연을 실시했으며 △동학농민혁명 시기 당진농민항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합덕봉기의 성격과 의의 △피난록을 통해 본 면천지방 동학농민혁명 △승전목의 지형과 승전목 전투의 의의 △동학농민항쟁 관련 역사자원 활용-천주교 역사 자원과의 연계 등으로 주제를 발표했다. 이어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 소장, 김남석 호서고등학교 교사, 최만정 동학농민혁명아산시기념사업회 상임이사가 토론에 참여했다.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사건과 유적이 당진에도 많이 있다”며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바로 세워 후손들이 기억하고 기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토론 참가자] 김영곤 전 고려대학교 강사, 류승완 성균관대학교 연구원,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김성태 합덕성당 주임신부
[주제발표]
김영곤 전 고려대학교 강사
“사회경제적 조건이 작용한
합덕농민항쟁과 승전목 전투”
“합덕농민항쟁과 동학농민 전쟁의 승전목 전투는 당진지역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작용했다. 농업생산력의 발전과 상품화폐 보급에 따른 농민층 분해의 심화, 삼정 수탈의 강화, 토호의 저수지 개간과 수세 증가에 따른 수탈 관개 공동체 파괴 반대, 집강소 농지개혁 요구, 항일전쟁에서 척양·왜의 요구 등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지주, 조정과 관료, 외세에 반대하며 사회 전반의 변화를 추구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이 생존을 위해 저항했던 것처럼 현재의 민중도 어려움을 헤쳐 나갈 마땅한 방도가 없을 경우 절망하지 말고 생존을 위해 저항해야 한다.
류승완 성균관대학교 연구원
“합덕봉기, 동학혁명의 기원”
“합덕봉기는 시기나 내용 면에서 고부봉기에 앞서거나 동학혁명의 기원으로 나란히 평가돼야 한다. 합덕봉기 이후 내포지역 농민들은 동학군으로 발전되면서 일본군·관군 등 지배계급의 연합세력과 전쟁을 치렀고, 이 전쟁이 동학군이 전략적 승리로 끝났다면 조선의 근대는 반외세·반봉건을 지향하는 주체적 변혁의 길을 갔을 것이다. 민중들은 승리를 거두지 못했지만 내포동학군은 합덕봉기와 이어지는 승전목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했다. 이것은 합덕봉기와 동학혁명의 효시를 확인해주는 역사적 근거다.”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신분적 불평등, 국가적 위기가 동학 확산의 요인”
“피난록을 통해 면천지방의 동학농민혁명의 특성과 전개과정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피난록에 의하면 내포지방에 동학이 확산된 것은 보은취회 이후였다. 보은취회를 성공리에 마쳐 동학은 농민들에게 부정부패에 따른 억압과 착취, 외세로부터의 국가적 직위, 신분적 불평등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내포지방에 동학의 확산이 일어났던 요인은 신분적 불평등에 따른 억압과 착취에서 찾을 수 있으며 외세의 위협과 국가적 위기상황을 들 수 있다.”
김성태 합덕성당 주임신부
“스토리텔링과 소프트웨어 중요”
“하드웨어의 구축이나 외형상의 작업보다는 구체적으로 관심의 유발을 촉구하는 것이 중심이다. 이미 조성되고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라 하더라도 그 의미의 다양성이나 올바른 정보의 제공이 자신들이 가진 신념이나 신앙을 훼손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데에 착안했다. 더욱이 천주교와 동학의 태동이 역사적으로 일정부분 상반되거나 적대적인 이유에서 이뤄졌고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적인 충돌을 빚은 바 있다. 때문에 화해와 공존, 상호 이해라는 거시적인 안목을 해당 종교나 그 밖의 사람들에게 심어주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