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술은 건강을 위하여 두 잔 술은 기분을 위하여 세 잔 술은 기쁨이 절로 찾아오며 네 잔 술은 홀로도 마냥 즐겁고 다섯 잔 술은 노래를 듣는다. 하지만 그 외의 술잔은 모두가 실수의 원인이 된다.
70년대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잔에 옆에는 색시가 술 따르던, 그 술기운에 노래 한 곡조 하면 젓가락 숟가락으로 장단 맞추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술버릇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나는 술을 마시면 취할 때까지, 그것도 모자라 이성을 잃을 정도까지 마셨다. 그러다보면 실수하기가 태반이었고 가족들은 항상 불안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회사를 출근하지 못하는 날도 허다했다.
반복되는 나의 주사 때문에 가족과 친지뿐만 아니라 회사동료 친구들에게도 외면당하는 불행한 나날이 계속됐다. 그러던 와중에 아버님께서 ‘누구는 침을 맞고 술을 끊더라. 너도 한 번 그런 의지를 가져보아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난 고민에 쌓였다. 40대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때이기에 난 더 이상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기가 싫었다.
불교 신자인 나는 가끔씩 새벽기도에 나선다. 어느 날 관음정진 하다가 새로운 각오가 생겼다. 마음이 변하기 전에 곧장 집으로 와서 식구들에게 술을 끊겠다고 선포했다. 그길로 곧장 경희대 한방 내과를 찾아갔다. 특진도 5~10분이면 끝나는 것이 우리 의료계의 실상이지만 술을 끊어 보겠다는 한 사람을 위해 김영철 교수님은 1시간 동안이나 상담에 응해주셨다.
술 취할 때의 행동과 평상시와의 행동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김 교수님은 정신과 입원을 고려해 봐야 한다며 말했다. 담당 의사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1주일에 2회 5주간 금주침을 맞고 그 다음부터는 월 1회 1년간 맞으면 된다고 했다. 어쨌든 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경희대 의료원까지 버스, 전철과 도보로 왕복 4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에 난 수없이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다. 상품 종류에 따라 가치에 차이가 있듯이 사람도 그 나름대로의 인품과 인격이 있다. 나도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스스로 내 인격을 갈고 닦으리라’라고 다짐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20년 째 금주를 하고 있다. 가끔 술 생각이 나긴 하지만 머리 속은 술자리가 있어도 마시고 싶은 충동은 없다. 현재도 변함없이 두 달에 1회 금주침을 맞고 있다. 금주침을 맞지 않아도 되지만 김 교수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찾아 간다.
술을 끊고 난 뒤 우리 가정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부모님은 물론 아내 그리고 자식,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나를 대단한 사람들로 평가했다. 나 자신 또한 편안하고 실수 없이 항상 부모님과 가족들을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절로 났다. 또한 회사 생활도 인정받으며 자신 있게 업무를 수행했으며 부모님께 매일 전화를 하고 아내와 자식 간에 대화를 많이 함으로써 화목하고 편안한 가정을 이끌었다.
간혹 어떻게 하면 술을 끊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난 자신 있게 내 경험을 전해준다. 술을 끊고 난 뒤 재산 증식도 많이 늘렸다. 이제 남은 내 인생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 행복한 가정, 형제간의 우애, 친구·동료 간의 믿음 등 그동안 못 다한 것을 제대로 하고 싶다. 또한 술로 인해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아버님, 어머님 건강하시고 오래도록 삶을 누리세요. 늦게나마 효도 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