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태어나 꽃을 피웠다. 한보그룹의 부도로 당진 전역이 휘청거렸던 그때, 당진의 대표적인 새마을운동인 ‘우리마을 사랑운동’이 시작됐다. 한국전쟁 이후 피폐해진 한국사회에서 새마을운동으로 마을 곳곳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처럼, 우리마을 사랑운동도 그랬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새마을운동
‘새마을운동=박정희’라는 인식이 강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편견도 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와 인권탄압에, 주민들이 새마을운동으로 일궈놓은 일말의 성과조차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70∼79년까지 새마을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을 정도로 각 마을에서 이뤄진 새마을운동은 당시 한국사회를 일으켜 세운 자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전국 새마을 조직이 정치세력화 되고, 군사정권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은 1981년 시작된 제5공화국 때부터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각 마을주민들의 자발적인 새마을운동이 아닌 ‘새마을 조직’을 키워 중앙회를 설립, 사회단체화 했다. 국민들의 지지가 아닌 쿠데타를 통해 얻은 권력은 자신의 기반을 세우고자 각 마을의 지도자와 부녀회장 등을 정치에 활용한 것이다.
열심인 마을 더 잘하도록
타 지역은 차치하더라도 당진의 경우 1997년부터 본래의 새마을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바로 지금까지 20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우리마을 사랑운동이다. 1971년 새마을운동 첫 사업이 각 마을에 시멘트를 지원하면서 이를 나름대로 활용하게끔 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효율적으로 사용한 마을에게는 다음해에 더 많은 시멘트와 철근까지 지원했던 것처럼, 당진시의 우리마을 사랑운동도 열심히 활동한 지역에 대해서는 시상금을 통해 더욱 지원하고 있다. 주민들에게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와해돼 가는 공동체를 세우고,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해 자립하는 마을, 자치를 실현하는 지역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1990년대 초 당진시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다. 정부의 파격적인 특혜를 통해 한보철강이 건설되면서, 당진 주민들은 주된 생계였던 농어업을 포기하고, 공장 건설현장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난 호황을 누렸지만, 삶의 터전이었던 농촌지역의 실상은 피폐해져갔다. 논에는 피와 잡초가 무성할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1997년 한보그룹이 무너졌다. 지역경제도 국가경제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1995년 첫 민선1기 지방자치단체장이 탄생한 뒤 당진시에서는 정책개선사업을 공모, 새마을운동 당진시지회의 우리마을 사랑운동을 최우수 정책개선사업으로 선정했다. 우리마을 사랑운동을 위해 당진시는 당시 3억780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예산을 세워 1997년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다.
일거리와 자본이 없던 주민들이 이 사업에 참여했고, 마을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팽개쳐진 논과 밭을 일구고, 마을길에 꽃을 심는 등 내 지역을 가꿔나간 것이다. 새마을운동 당진시지회 이민선 상임이사는 “당시 3억78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30억 원에 달하는 사업효과를 거뒀다”며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사회단체와 지자체의 민·관 파트너사업으로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행정·의회·지역사회의 하모니
이렇게 시작한 우리마을 사랑운동이 20년 차를 맞았다. 그동안 우리마을 사랑운동은 △공동체의식 △환경 △미풍양속 등의 분야에서 마을을 가꾸고,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영농활동 및 소득사업을 통한 재정적 자구노력 등을 실천해오고 있다. 연말에는 각 마을 및 읍·면·동의 노력과 성과를 평가해 상사업비를 지원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지역사회에 수많은 단체들이 생기고, 봉사활동의 분야도 다양해지면서 새마을운동 당진시지회는 사람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를 늘 개척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김장 담그기 활동이 지역사회 전반에 확대되면서, 고추장을 담가 전달하기 시작하거나, 개발에 뒤쳐진 낙후된 곳에서 범죄가능성이 높아지자, 늦은 밤 방범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마을 사랑운동이 정착해가면서 나름의 고민도 생겼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 사업의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단순히 상(사업비)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할 동력이 없는 지역, 침체된 지역의 경우 계속해서 경쟁에 뒤쳐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마다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며 사업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이민선 상임이사는 “우리마을 사랑운동을 통해 당진 주민들은 지역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고 자립하는 능력을 키워왔다”며 “이것이야 말로 풀뿌리 주민자치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진 새마을활동이 전국 최고의 새마을운동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은 △지자체의 의지 △의회의 협조 △시민단체·언론의 동조 △주민들의 호응 △새마을단체(지회)의 능력이 고루 어우러진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각에서는 아직도 새마을운동에 대한 편견이 많지만 선입견을 버리고 당진 새마을의 활동만으로 순수하게 평가해줬으면 한다”며 “관변단체 노릇을 하는 것과 시책에 협조하는 것은 달리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니인터뷰 새마을운동 당진시지회 정완옥 지회장
“주민 화합·봉사…지역 변화해”
당진읍 수청리 새마을지도자로 시작해 지회장까지 새마을 활동을 12년째 이어오고 있는 정완옥 지회장은 “우리마을 사랑운동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과 호응이 높다”며 “우리마을 사랑운동에 참여하면서 지역의 변화를 느껴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정 지회장은 “우리마을 사랑운동을 통해 주민들이 화합하고, 이웃과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키우고 있다”면서 “매년 사업에 참여하는 마을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진에 이주민이 많아져 공동체가 느슨해지는 한편, 농촌지역은 고령화로 일할 사람이 부족합니다. 새마을운동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섰듯, 우리마을 사랑운동으로 당진시가 어려움을 극복했듯, 힘든 여건을 이겨내고 제2의 새마을정신을 구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