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며 살고 있는 장인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 지역의 문화와 역사와 전통이 되고 있는 가운데 본지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소개하는 한편 영상을 통해 담아 내고자 한다. 제작된 영상은 추후 당진시대 홈페이지와 CJ헬로비전 충남방송을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아미미술관이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어느덧 하늘거리던 꽃잎은 지고 생기를 가득 머금은 잎들이 넘실거린다. 아미미술관은 하루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봄이면 연분홍 꽃잎이 만개하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가득찬다. 또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든 잎들을 하나씩 떨궈 내다, 겨울이 되면 소복이 쌓인 눈에 사람들의 발자국조차 묻히듯 적막감이 맴돈다.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그곳에 서양화가 박기호 관장이 있다.
해외여행에서 유학길에 오르기까지
현재 아미미술관은 유동초등학교(당시 유동분교)를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폐교에 새로운 숨결을 넣어 최근엔 전국 방방곡곡의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당진 출신인 박기호 관장은 추계예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이후 198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양화 구상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고 부상으로 프랑스 여행의 기회를 얻었다. 여행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당시 박 관장의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지 못했다. 어렵게 미술학도의 길을 걷는 그에게 당시 해외여행이란 꿈도 꿔보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프랑스 여행 기회를 얻었으니 그에게는 인생 최고의 기회였던 것이다. 이 여행의 경험이 파리국립미술학교 유학으로 이어졌다.
파리에서의 충격, 작품 영향까지
파리에서 보낸 유학생활은 그의 인생과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박 관장은 “프랑스에서는 예술대학에 입학하려면 어렸을 때부터 낙서했던 것들을 모아 제출해야 했다”며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나에게 프랑스에서의 경험은 정신적인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한동안 그가 받은 충격을 작품에 담아낼 정도였고, 그의 작품은 파리국립미술학교에 전시되기도 했다.
아내, 구현숙 작가와 만나다
그의 아내 구현숙 작가와의 첫 만남은 프랑스 파리에서 이뤄졌다. 파리에 잠시 들린 구현숙 작가의 가이드를 맡게 된 박 관장은 떠나는 구 작가에게 “서울 가서 전시를 하게 된다면 연락하겠다”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물어 수첩 한 귀퉁이에 적어 놓았다.
그 후 서울에 가게 된 박 관장은 수첩을 보고 구 작가에게 연락했다. 서산 출신인 구 작가와 당진 출신인 박 관장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함께 고향에 내려가곤 했다. 버스 안에서 서로의 인생 이야기와 작품 이야기, 또 유학 시절과 젊은이의 불안한 감정들을 공유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박 관장은 구 작가에게 “결혼 안 하느냐”고 물었고 구 작가는 “남자가 없다”고 답했다. 이에 박 관장은 “바로 옆에 있지 않느냐”고 말했단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돼 지금까지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하고 있다.
아미미술관을 만나다
그가 처음 아미미술관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유동초가 폐교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작품 활동을 할 곳을 찾다가 이곳에 입주해 작업하기 시작했다. 당시엔 학교를 임대해 사용했기 때문에 리모델링 등 그가 직접 손을 댈 수는 없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전국 곳곳의 폐교를 다니며 미술관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마침 유동초등학교 매각 공고가 나왔다.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돈을 빌려가며 학교를 매입했다.
그는 “고향 당진은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애틋한 존재였기 때문에 학교를 매입해 아미미술관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유동초등학교의 본래 형태를 두면서 조금씩 미술관의 모습을 갖춰 나갔다. 세련되고 좋은 최신식 창문을 설치해 보기도 했지만 학교가 가진 그 특유의 오래된 멋이 나지 않아 일부러 창문을 만드는 목수를 수소문해 창문을 전면 교체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아미미술관은 학교의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여행이 남긴 영향, 아미미술관으로
학교 건물은 물론이고 교장의 사택으로 사용됐던 한옥 건물, 카페로 변신한 창고까지 박 관장은 최대한 그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미술관을 가꿔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그의 청춘이 담겨 있는 여행의 영향이 컸다.
그의 첫 파리 여행은 도시와 도시를 넘나드는 여행에 불과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뒤 다시 여행을 시작했을 땐 배낭 하나 둘러메고 전 세계의 오지를 20년 간 다녔다 그는 “도시는 어디든 사람이 많고 소비적인 반면 오지는 인간과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순수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오지 여행의 경험이 작품과 아미미술관에 그대로 스며있다. 청년 시절의 깨달음이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까지도 고집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역문화의 중심 되는 미술관으로
한편 그는 앞으로 ‘당진’과 ‘여행’을 담은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곳에서 왜목마을까지 가는 길에 대한 생각을 담아내거나 혹은 당진 바다에서 주운 오브제를 활용하는 작품 등 다양한 모습으로 당진을 그려낼 예정이다. 또한 그의 인생을 담아낸 첫 개인전도 이곳에서 열고 싶단다.
한편 지역 문화에 대한 고민도 많다. 그는 “아미미술관이 지역문화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고 있다”며 “당진은 물론 인근 타 지역에서도 중심이 되는 미술관으로 성장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