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는 한창 돈 버는 재미에 흠뻑 빠져 살았다. 주식 투자를 하면서 꽤 큰 수익을 냈고, 서울에서 ‘돈 좀 있다’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 우아하고 고상한 말투, 예쁘장한 외모, 발 빠른 정보에 사람들은 그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학교 어디 나왔어?”라는 물음에는 그저 웃어 넘겼다. 지난달 검정고시를 합격해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은 권신숙(75·송악읍 기지시리) 씨는 그동안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살아가는 데 큰 불편함을 주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학교는 나오지 못했지만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5년 전 당진으로 귀촌했고 우연히 해나루시민학교(교장 문선이)를 만났다.

우연히 만난 해나루시민학교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당진여성의전당에 갔는데, 누가 해나루시민학교에서도 공부를 배울 수 있다는 거예요. 검정고시도 보고, 학교 졸업장도 준다고 해서 ‘나도 해야겠다’ 싶은 마음에 해나루시민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죠.”

지금 구 군청사로 자리를 옮긴 뒤엔 학업 여건이 무척 좋아졌지만 백병원 뒤 가건물에 위치해 있을 당시만해도 해나루시민학교는 비가 새고, 곰팡이가 까맣게 앉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런 어려운 여건이지만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해나루시민학교에서 배움의 길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 때부터 권 씨도 배움의 여정에 함께 하기 시작했다. 2012년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나왔다. 그렇게 나이를 잊고 공부에 매진하다 과로로 인한 신우염으로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공부를 향한 열정은 20대 청춘 못지 않았지만, 일흔이 넘은 몸이 이를 견디지 못해 무리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픈 와중에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지난 4월, 대입검정고시까지 모두 합격했다. 특히 합격자 중 충청남도에서 최고령자란다. 권신숙 씨는 “공부가 너무 재밌다”며 “힘든 줄도 모르고 끊임없는 행복을 느끼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전쟁통에 초등학교도 졸업 못해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6.25 전쟁으로 인해 5학년이었던 당시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대구로 피난길에 올랐다. 전쟁 당시는 물론이고 휴전 이후에도 공부는 물론 끼니를 해결하기도 쉽지 않았다. 장녀라는 이유로 집안 일을 돕기 위해 학업을 놓아야 했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평생을 당당하게 살아온 그는 결혼 후 3남매의 어머니가 되면서 점차 배움에 대한 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다시 책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삼남매를 돌보며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고 당시 여성이 사회로 나오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3남매가 장성해 사회에 진출하면서 여느 주부들처럼 지자체에서 마련하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여가생활도 즐기고 견문도 넓혀 갔다. 그러던 중 당진에 내려와 해나루시민학교를 만난 것이다.

공부에 대한 갈증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매진했던 그는 지난 2012년 공부를 시작한지 5개월 만에 당진시청에서 진행된 당진시평생학습한마당 문해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공부를 시작한지 불과 4년 만에 초·중·고등학력 검정고시를 모두 패스한 그는 이제 대학 입학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원래 국문과나 영문과를 희망했지만, 암기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 같아 평소 역사를 좋아했던 만큼 사학과 진학으로 목표를 바꿨다. 최근에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도 준비 중이다.

그런 권 씨를 보며 자녀들도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미국 뉴욕에서 국제변호사로 일한다는 큰딸은 권 씨에게 “다른 사람 같았으면 진작 포기했을 텐데, 우리 엄마 대단하다”며 “다음 생에 태어나도 엄마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해 감동받았단다.

“느즈막히 시작한 공부로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어요. 기왕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죠. 물론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건 쉽지 않지만 깨우치는 즐거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고된 일을 하는 것보다 배우는 일이 나이 먹어 하기에 가장 좋은 일 같아요. 해나루시민학교 학생들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