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터키에서 죽은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이란 쿠르디를 기억하며, 지난 20일 ‘세계난민의 날’을 맞아 난민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난민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처음 난민 구호 활동을 시작한 사단법인 ‘피난처’를 찾았다. 피난처에서는 난민들의 난민 신청 과정과 생활, 취업 등을 돕는 직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피난처의 이재린 간사의 안내로 각국의 난민과 인사를 나누고 난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난민이란 정치적 의견, 인종, 국적, 종교적 차이와 같은 원인들로 차별받고 박해받을 수밖에 없어 다른 나라로 피신해, 돌아갈 국가도 고향도, 집도 없는 이주민이다. 우리나라는 1994년 난민협약에 가입한 이후 난민협약 이행을 위해 2012년 난민법을 제정했다. 현재 국제사회의 보호가 필요한 6000만의 세계난민 가운데 1만5250명의 난민 신청자들이 한국에 보호를 요청한 상태다. 그 중 576명은 난민으로 인정됐고, 910명은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아 우리의 새로운 이웃이 됐다.

난민을 보호하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난민’에 대한 생각은 부정적이다. 도움이 안 되면서 혜택만 누리는 사람이라거나, 잘해주면 더 많이 올 거라 여기거나, 인종이 다르다고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불편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난민이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아인슈타인, 쇼팽, 김구도 난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난민은 불편한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1870년 독일에서 태어나 유태인 가정에서 자란 아인슈타인은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이후 독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국에서 난민이 됐다. 그는 난민으로서 독일 내 또 다른 난민들이 어려움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 역사 속 일제식민지 지배에 저항해 중국과 만주로 떠난 조선인들도 난민이었다. 김구 선생 역시 마찬가지다. 우린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며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던 나라다. 또한 현재는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휴전국이다. 그들 누구도 자신의 인생에서 난민이 될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다.

지금 우리가 난민을 향해 “괜찮아 질 때까지 함께하겠다”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는 지난 역사와 지금 우리의 상황이 말해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재린 간사는 “난민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편견과 경계심이 그들에게 또 다시 ‘절망’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계성초 3학년 이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