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김동완 전 국회의원을 만났다. 지난 5월 말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4년 만에 자연인으로 돌아왔다.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지난 4.13 총선 결과에 충격이 컸을 터였다. 지난 4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새누리당 당진시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았다. 선거 때마다 공천 갈등이 불거져 마음고생이 꽤 심했다. 김 전 의원은 선거에서 낙마한 뒤 앞만 보고 달렸던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유권자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최근 블로그·SNS에 ‘와니의 아침편지’를 올리며 일상을 나누고 있다.

4.13 총선 이후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우선 아내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아내는 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중풍으로 몸져누웠던 어머니를 모시며, 자녀 셋과 조카 4명까지 함께 키웠다. 오랜 공직생활에 이어 국회의원직을 맡으면서 내가 지역구를 챙기지 못할 땐 아내가 나를 대신했다. 그동안 아내에게 죄진 기분이었다.

지난 2013년이 결혼 30주년이었는데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중이라 여행을 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마침 올해 결혼 33주년이라 일본으로 아내와 함께 크루즈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큰딸의 결혼이 얼마 전에 있었고, 최근에는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며칠 태안여행을 다녀왔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나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살았다. 선거 이후 아내를 위로하고 가족들을 돌보면서, 그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국회의원으로 지냈던 지난 4년은 어땠나?

지난 4년을 돌이켜보니 ‘나만 생각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살아왔던 길이 경제·안보·지역발전 등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익숙해져 있었다. 신변잡담(身邊雜談)에 익숙하지 않았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신변잡담 대화에 끼어들기 어려웠다. 유권자와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반성하게 됐다. 사람이 살아가는 게 고담준론만 갖고 살지는 않는다. 허겁지겁 살아온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느림의 미학을 생각했다.

그런 측면에서 천천히 다니며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전거를 샀다. 아침·저녁으로 자전거로 동네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다. 자동차로 큰 길만 지나다가, 자전거로 다니는 당진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보여주기 식’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고 한다. 결코 그런 생각은 아니다. 전직 국회의원 중에 낙선한 뒤 당진에 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길 들었다. 그러나 나는 갈 곳이 없다. 서울생활을 다 정리했다.

블로그를 통해 ‘와니의 아침편지’를 쓰고, SNS로 이를 공유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그때 고도원 작가가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실 연설담당비서관을 맡고 있었다. 이후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이메일 편지를 매일 받은 적이 있는데, 이를 모티브로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자 했다.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나의 일상과 생각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마다 글을 쓰는 게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사람들과 약속한 만큼 꾸준히 글을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패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어렵지 않게 당선되다 보니, 당연히 지역 분들이 나를 지지한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이분들을 소홀히 여긴 건 아니었는지 생각했다. 내 시각으로만 사람들을 바라보다 보니 적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자업자득 아닌가 싶다.

공직에 오래 있었다보니 특정 계파에 속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정치를 하면서 공부(연구) 모임을 주로 찾아 다녔다.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 어떨 때는 친박, 어떨 때는 비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오히려 부메랑이 된 것 같다. 내가 정치를 너무 몰랐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 결과를 분석하자면?

내가 국회의원으로 재임 중에 당진 인구가 1만2000명, 유권자수가 1만 명 정도 증가했다. 대부분 근로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노동개혁을 막겠다는 의지가 컸다. 때문에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인 어기구 국회의원을 지지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지난 4년 동안 근로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이들에게 나를 이해시킬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

물론 노동계에 있는 분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것은 맞지만 지역사회의 메이저리티(다수)는 아니었다. 김낙성 전 국회의원을 지지하던 표가 새누리당 공천 분열로 인해 나에게 오지 않았다. 상당수 송노섭 국민의당 후보에게 갔다. 계파 갈등, 공천 갈등 역시 내가 겪을 운명이었다. 유권자와 충분히 교감하지 못한 것은 지지기반이 흔들린 것이다. 누굴 탓하겠나. 내 탓이다.

그동안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평소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누군가를 경시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고담준론에 집중해 있다 보니 유권자들이 그렇게 오해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 이것조차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지방선거와 지난 총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공천 문제로 갈등이 컸는데.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공천 과정에서 특정인을 선거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반민주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당에 대한 기여와 상관없이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송전선로·석탄화력발전소 등 지역현안이 많다. 지역 정치인으로서 이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시민의 뜻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 하지만 국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진 지역사회를 위해 국가 공동체를 도외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역사회 공동체와 국가 공동체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계속 정치를 할 것인가?

대접받는 자리에만 늘 있었지 섬길 줄 몰랐다. 이런 게 내 삶에 굳어져 있는 것을 보고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이런 내 모습이 변할 수 있을 것인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 내 마음대로 정치를 그만 둘 일은 아니지만 정말 내가 변할 수 있는지 연말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우선은 건강을 다지며, 마음공부를 하고 싶다.

어기구 국회의원과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는 어기구 의원이 당진을 대표해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시민들은 이제 어 의원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야 줘야 한다. 어 의원은 대한민국 현실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해, 국가와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해주길 바란다. 어 의원은 지적능력도 우수하고 똑똑한 사람이니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잘 할 것이다. 시민들이 기다려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