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8일. “똑똑똑 계세요?”
9시쯤 아침 식사 후 식탁에서 가족들과 함께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청솔유통이라는 식자재를 실은 트럭이 마당에 나타났다. 위생복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운전해 오신 분이 이것저것 박스를 내려 주시면서 어떤 분이 전해 주라고 했단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어리둥절하며 어떤 분인지 알고 감사를 드려야 되니까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고 물었다. 하지만 후원하시는 분이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며 몇명이 생활하냐고 물어보고는 물건만 내려놓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내려놓고 간 박스를 뜯어보니 계란, 양파, 대파, 손질한 오징어, 수프, 무, 위생팩, 수세미, 설탕, 돼지고기, 고등어 등이 들어 있었다.
내리막길을 트럭이 내려 갈 때 청솔유통이라는 상호 아래 적혀있던 전화번호를 빨리 메모해 두고는 깊은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어떤 분이며, 어떻게 우리 집을 알았으며, 어떤 이유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시는 분일지 온갖 상상을 했다. 힘들어 낙심하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천사들이 있으니 힘내서 장애인들을 잘 섬기라고 천사를 보내주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그분의 아름다운 섬김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는 아무 연고 없이 4년 전 당진으로 내려왔다. 인간적인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마지막 남은 삶을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세 딸의 엄마다. 둘째가 신생아 때 41도가 되는 고열로 인해 9개월이 지난 후에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세브란스병원에서 받게 되었다. 그 딸로 인해 나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변화가 많이 되어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흐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통합 되어가고 있는 시대지만 그 당시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인식이 좋지 않아 숨기며 살던 때였다. 나 역시 장애인 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죄책감으로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 당시 내가 꿈꾸던 행복이란 강남 8학군에서 자녀들을 일류대에 보내고 좋은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왔는지 좌절하며 인생의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나는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온 세상이 달라 보였다. 당연히 여겼던 건강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일류대가 아니라 어떻게 자녀를 키워야 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참 행복한 삶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후로 난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내 딸이 장애가 된 것이 우연히 아니라 분명한 계획이 있음을 깨달았다. 나를 절망에서 소망으로 변화시킨 예수님이 너무 좋아서 더 알고 싶어 신학교를 가게 되어 전도사가 되었고 장애인들과 함께 살기위해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여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두 자녀를 자립시키고 30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아파트를 팔아 당진으로 내려와 땅을 사 집을 건축했다. 나는 너무 단순해 사람을 바보처럼 잘 믿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근저당 된 땅을 속아 사게 되었고 결국 경매를 당하게 되어 1억 원이라는 빚을 지게 되었다.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이 낙심되고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던 마음에 힘이 빠지면서 감당하기에 버거운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오던 중이었다. 그때 만남이 바로 아름다운 섬김의 손길이었다.
난 아직도 그분이 정확하게 누구신지 모른다. 처음엔 너무 고마워서 알아보고 했지만 그분의 뜻을 전해 들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다고 해도, 사랑이 메말랐다고 해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이웃을 돌아보며 사랑이 필요한 곳에 맞춤형 후원을 하시는 아름다운 섬김을 실천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아직도 세상은 밝고 희망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사랑이 지금도 7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월, 수요일 오전 어김없이 청솔유통 차는 우리 샤론의집 마당에 10명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를 담은 박스를 내려놓고 사라진다. 나도 낙심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섬김으로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주며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