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음력 정월초하루)부터 드디어 정유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먹거리 가운데 닭처럼 친숙하고 널리 알려진 먹거리도 없을 것입니다. 삼계탕, 닭강정, 닭가슴살, 닭볶음 등 닭고기와 관련된 프렌차이즈만큼 수요가 다양한 음식도 드물 것입니다. 거기에다 계란까지 닭이 인간에게 남겨주는 먹거리는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항상 닭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대명사로 곧 잘 사용합니다.
‘닭 대가리’ ,‘닭기고집’, ‘계륵(鷄肋)’, ‘꿩 대신 닭’
그럼에도 닭에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예로부터 계유오덕(닭의 다섯가지의 덕)인 ‘文武勇仁信(문무용인신)’을 논하는 것을 보면 규모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깨달음이 강렬합니다. 닭에 대한 예찬론이라 할까요?
새벽에 닭이 울 때를 계명성(鷄鳴聲)이라 했습니다. 모든 것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을 때 울리는 새벽 닭소리는 부지런함과 새벽의 신성함을 가져다줍니다. 닭이 울어야 새벽이 오는 것입니다. 닭 울음은 빛이 온다는 것을 노래하는 예고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파수꾼으로 우리를 일깨웁니다.
어릴 적 우리 어머님은 늘 닭 우는 소리에 맞춰 새벽기도로 정성을 드렸고, 아버님은 닭 우는 소리에 논과 밭으로 향하시곤 하셨습니다. 닭 우는 소리는 생활의 자명종이었던 것입니다.
밤문화가 익숙한 현대 사람들은 일찍 깨우는 닭소리에 무관하겠지만 우리는 예로부터 닭이 울었기에 여명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소리에 일과를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닭 소리는 새벽을 불러오고 빛을 불러오고 밝음을 불러오는 신비스런 힘이 배어있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는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 감금 당했을 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을 온다”는 유명한 부르짖음을 통해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왔습니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108:2)”
예루살렘 시온산 남동쪽 언덕에 위치한 ‘베드로 회개 기념 교회’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성경 속 장면을 토대로 지어졌습니다. 교회 지붕 종탑 꼭대기에는 그 의미를 상징하듯 닭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순간 닭이 우는 광경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닭의 모습입니다. 그런 면에서 닭은 현대인들에게 신의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에 깨달음을 주는 동물로 소개됩니다. 또한 닭의 울음소리는 어두움과 악의 힘을 내쫓는 울음으로 죄와 죽음을 극복하는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십자가 위에 풍향으로 세워진 닭 모양 장식은 ‘회개’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가장 먼저 닭이 우리에게 그 소식을 알려 줄 것이라는 희망도 담겨 있습니다. 풍향계를 함께 달아 바람의 방향도 미리 알아챌 수 있도록 한 것은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고 이끄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닭의 울음소리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자어로는 ‘계명점(鷄鳴占)’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연조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농경시대에 정월 대보름 꼭두 새벽에 첫번째 우는 닭소리를 들으면서 그 횟수를 세어 울음소리 횟수가 적으면 흉년이 들고, 열 번 이상 울면 풍년을 기대했습니다.
닭은 먹이를 혼자서 독식하지 않습니다. 무슨 먹거리라도 생기면 다른 닭들에게 먹이가 있음을 알리고, 두발로 먹이를 끌어내어 모두 함께 먹이에 동참하게 합니다. 먹을거리가 생기면 상대방의 접근을 금하고 혼자서 독식하는 사나운 동물들에 비하여 얼마나 여유롭고 당당함이 배어있는가요?
닭은 알을 품을 때는 네 알 내 알 따지지 않습니다. 모두 품어줍니다. 무슨 이념이나 다름을 의식하지 않고 무조건 품어줍니다. 누가 이런 닭을 닭대가리라고 업신여길 수 있을까요? 어떤 환경에서도 울음소리를 멈추지 않고 새벽을 깨우는 계명성의 일갈이 필요한 지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