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보다도 앞선다고 한다. 술이 언제부터 등장한 지는 정확한 자료가 없다보니, 자연에서의 농익은 과실이 떨어지면서 상처가 나고 거기에 빗물이 들어가면서 공기 중의 효모(酵母)에 의해 발효되어 술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자연채취식(自然採取食)을 하던 원시인들은 자연 발효된 과실주(果實酒)를 발견하게 되고 향기와 맛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 자연 발효된 과실은 주로 야생의 머루나 포도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측되어지기 때문에 인류 최초의 술은 과실주였을 것으로 믿게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의 성질을 보고 물에서 불이 생겨난다고 여겼다 ‘물’, ‘불’ 이라는 글자에서 물은 한자어로 ‘水’로 바뀌고 불은 한글 말 그대로 ‘불’이라고 불리다가 두 글자가 합쳐져 ‘수불’이 되었다. 이 말은 다시 ‘수을’이라고 불리다, 단음인 ‘술’이 되었다. 우리나라 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 동명성왕 건국담>에서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딸 세 자매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취하게 한 뒤 큰 딸과 인연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쓰여있다. 해모수가 세 자매에게 대접 했다는 술이 어떤 종류의 술인지 그 이름이나 종류는 전해지지 않아 자세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고문헌의 기록과 곡물의 가공기술, 양조방법 등을 고려할 때 탁주(濁酒)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곡주가 바탕을 이루었고, 고려시대에는 증류법이 도입되어 술의 종류를 탁주, 청주, 약주, 소주, 과실주로 세분화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집집마다 다양한 종류의 술을 빚어 마시는 문화가 형성되어 전통주의 전승기를 이루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맞아 1909년 주세법 공포로 수 백종에 달하던 전통주가 사라졌고, 광복 후 6.25 전쟁 당시 식량난에 밀주가 단속되었다. 또한 1960년대에는 ‘양곡관리법’ 제정으로 전통주의 명맥이 사라져 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전통주를 발굴하여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1985년 문화재위원회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우수한 전통 민속주의 제조기능이 생활 문화의 변천으로 점차 인멸되어 가고 있어 이를 지정하여 전승, 보전코자 한다” 하여 이듬해인 1986년도에 문배주, 면천두견주, 경동교동법주를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면천두견주의 유래는 고려건국 시기의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설화 내용은 고려개국공신 복지겸이 원인 모를 중병을 앓아 백약이 무효인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그의 딸 영랑이 면천의 아미산에 올라 지극 정성으로 기도를 하던 중 100일째 되는 날 산신령이 나타나 “아미산 진달래 꽃잎을 따다 찹쌀과 안샘물로 술을 빚어 백일을 두었다가 드리고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어 정성을 드려라. 그러면 네 아버지의 병이 나을 것이니라”라는 계시를 받고, 이에 따라 술을 빚어 드려 병이 완쾌 되었다고 하는 설화가 면천두견주의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지극한 효성을 탄생시킨 약주다.

효능으로는 경북대학교 정용진 교수의 면천두견주 용역보고서에서 진달래꽃잎에 함유된 ‘아지라인’ 성분은 항산화효과와 진해작용, 신경통, 부인냉증, 류머티즘 등 성인병에 효과가 있다고 쓰여 있다.

현재 면천두견주는 증조부 때부터 두견주를 빚어오던 박승규 씨가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나 2001년 보유자의 사망으로 명맥이 단절되었다. 그러나 2004년 당진군에서 두견주의 명맥을 다시 잇고자 면천두견주보존회를 구성하여 문화재청에 보유단체 지정을 건의한 결과, 2007년 전국 최초로 보유자 없는 보유단체로 인증을 받아 면천두견주를 보존, 계승하게 되었다. 이달 20일에는 면천두견주 보유단체의 염원인 전수교육관이 개관한다.

면천두견주보존회에서는 잊혀 가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누구나 쉽게 접하며 체험을 통해 문화재의 가치를 보존, 전승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 되고자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