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확실히 수확의 계절이 맞나봅니다. 벌써 고3 교실 여기저기서 “합격!”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아이들에게도 가을은 인생의 첫 수확물을 거두는 시기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아이들은 ‘면접’과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결과의 뚜껑이 열립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제 17일 앞으로 다가왔고, 시험을 앞둔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당사자인 고3들의 가슴은 조마조마할 것입니다.
대학 입시의 시작을 언제부터로 잡을 것인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것입니다. 고3부터, 고1부터, 어떤 이는 초등학교부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 일리 있는 판단입니다. 현실적으로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내신 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가 생성되기 때문에 그 시점을 대학 입시의 기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고3 9월 초가 되면 수시전형 원서를 써야 하므로 본격적인 입시가 시작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입학 상담과 자기소개서, 추천서 부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수시전형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은 대부분 대학이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교과 내신 성적만 반영하는 학생부교과전형에 비해 학생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자기소개서의 경우 면담을 하고 활용 소재를 찾아 구성하여 윤문하기까지 일곱 번 이상을 만납니다. 그 과정에서 글을 쓰는 주체와 자기소개서의 주인공은 모두 학생이어야 합니다.
간혹 “선생님, 제 글 좀 한 번 봐주세요”라며 찾아온 학생의 글을 읽다 보면 글 속의 주인공이 제가 알던 아이가 아닌 경우가 종종 있고, 이런 글은 문체도 역시 아이의 문체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이야 절박한 마음에서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금전적 대가를 지급하며 얻어낸 결과물이겠지만 십수 년 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아 온 고등학생의 글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너무나 많은 기교의 이끼들이 덕지덕지 묻어있었습니다.
그 글을 써 준 쪽에서도 대가를 받았으니 나름대로 세련된 무엇인가는 남겨야겠기에 그리 했겠지만, 훗날 면접장에 들어설 아이에게는 덫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3년은 온전히 아이 자체로 평가받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11월 16일 치르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59만 명이 응시했다고 합니다. 수시전형의 마지막 관문인 ‘수능최저등급’을 통과하기 위해 응시한 학생도 있고, 내신 등급의 불리함을 수능을 통해 정시전형에서 만회해 보려고 응시한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간혹 수험생 할인에 필요한 수험표 때문이라 말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수능 한 가지로 줄 세우기 했던 시대에 비하면 다양한 전형이 생겨나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만 수시전형 원서 접수 이후 수능 성적이 필요한 학생과 더 이상 수능 성적이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이 한 교실에 머물게 되면서 수업이 파행을 겪게 되기 여러 해가 지나고 있지만, 교육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나 입시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학 어느 쪽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책임 있는 대처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실 수업이 온전히 교사의 몫이고 책임이라 말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만, 제도의 허점이 아이들의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있다면 그 책임을 나누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수능 응시를 수시전형 응시의 전제 조건으로 하거나 수능 미 응시생들을 위한 별도의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어느덧 결전의 순간이 왔습니다. 1학년 첫 시간에 ‘고등학교 3년이 빛의 속도로 지나갈 것’이라 이야기해주지만 아이들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3년의 세월이 지나 이제야 ‘빛과 같은 시간’을 느낍니다.
지루하고 힘겨웠던 순간들. 그러나 그 하루하루를 밟지 않고는 올 수 없었던 오늘.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이 시간을 소중하게 쓰지 않으면 후회만 남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17일’의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