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덕읍 사회복지사
합덕읍 사회복지전문요원 박범순씨
“그늘진 곳에도 삶과 희망이 있답니다”
모범공무원 포상금도 무의탁노인들을 위해 희사
“이게 누구래요. 인물이 훤해졌네요”
“그래 뵈여. 다 고마우신 이발사님 덕분이래. 그러면 뭐혀. 북망산천이 내일 모렌데...”
“앞으로 30년은 더 사실 분이, 이 좋은 세상을 두고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제가 북망산길 끝까지 불밝혀 드릴테니 걱정 마세
요.”
저울질 하던 손을 놓고 검고 거치른 이영희 할머니 손을 붙잡는 박범순씨.
“고마우이. 박서기 뿐이여. 다 자네 덕이우.”
성동서 한나절은 걸어와 배급쌀 받고 머리까지 곱게 깎은 이영희 할머니. 그저 고맙고 서러워 눈물이 글썽인다. 맞잡은 손이뜨겁기만 하다.
“아니, 할아버지 왜 또 나오셨어요. 이장님이 어련히 알아서 갖다 주실려고요.”
막 마당을 들어서는 재오지의 박호선씨가 뒤뚱뒤뚱 불편한 몸을 이끌고 들어서자 달려가 부축한다.
“미안혀서 그려. 오늘은 동구밖에서 젊은이가 태워줘서 얼마 안 걸렸어. 박서기 얼굴 보러 왔어.”
“잘 하셨어유. 명절도 다가 오는데 오신김에 하이칼라로 머리 좀 다듬고 가세요. 봉사자 선생님 부탁해요.”
여기는 합덕읍사무소 앞마당. 삶의 비정함과 인정이 함께 어우러져 진한 삶을 창출하는 쌀 배급이 있는 날이다.
박범순씨(35세). 직업은 공무원. 공식직함은 사회복지전문요원. 하는 일은 합덕읍에 거주하는 무의탁노인, 소년소녀가장, 모자세대, 자활보호자 등 3백43가구의 생활을 돌보며 도움을 주는 가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1978년 정부시책으로 처음 시작된 사회복지보장업무를 전문으로 돌보는 전국 3천명중의 한사람인 것이다. 버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그를 든든한 아버지로, 형으로, 오빠로 또 믿음직한 아들로, 이웃 아저씨로 기둥삼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첫 발령을 받고 머나먼 타향인 합덕읍에 온것은 92년 1월 25일. 그를 찾는 인연의 줄은 그의 발을 요동치게 했다. 더덜거리는 오토바이에 쌀가마니를, 때로는 구호물자를 얻어 뒤에 싣고, 재를 넘고 내를 건너고 그들을 찾아가는 길은 유난히 멀고험하기만 했다.
작년에는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소외된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합덕읍 관내 기관 및 유지들에게 직접 편지를 띄우며 후원과 결연가장을 맺어주기 사업을 펼쳤다. 미풍양속과 인정은 살아 있었다. 9명의 후원자가 나서고 결연가정도 생겼다. 그리고 다달이 3십만원의 후원금이 접수돼 무의무탁한 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를 찾아와 도움을 주려는 은인들은 모두 부자였다. 비록 생활은 부자라 마음은 따라 오지 못하였지만 겸손할 줄도, 사람 도리도 아는 사람중의 진짜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2년을 돌이켜 보면 보람이 있었던 나날들이었다. 그를 의지하던 6명이 7백만원씩 자활혜택을 받고 축산, 요식업 등에 종사하며 생활터전을 닦아 나가고 있고, 소년가장 미선양 자매가 결연가정의 도움으로 독지가에게 입양될 것이며, 소외된 이들을 돌보겠다는 인정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다 큰 소년인 박범순씨. 그의 고향은 충북 청원군으로 충북대를 졸업, 모교에서 조교로 재직 중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사회복지전문요원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작년 10월에 결혼한 부인 오인선씨와는 같은 고향 동문으로 지금은 서울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 UR로 농촌을 등지는 요즘 그들 부부는 농촌에 정착하기 위해 바쁘기만 하다.
마음은 마냥 부자이지만 그에게도 희망사항은 있게 마련인가 보다. 주말부부에서 벗어나 함께 당진서 근무하는 것이고 보사부 안에 복지청이 마련돼 전문직업인으로의 역할과 본업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가 돌보아 주는 3백43가구를 자주 찾아 보며 맨투맨으로 상담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저런 사람 보기 드물어. 복 받을겨.”
“암, 우리의 든든한 아들이여.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여”
박범순씨. 그는 세상에 몇 없는 행복한 사람이다.
서금구/당진시대 객원기자
합덕대건노인대학장
(0457)363-19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