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지 ‘인물편’에 대한 논란을 마감한다

공개적인 조사,논의로 검증거쳐야 ‘군지’- 김태숙

본보 137호(96년 8월 19일자)에 좧군지인물편 전면수정논란좩 기사가 보도된 이후 집필자의 반박문이 본보 140호에 게재된 것을 것을 비롯해 타 향토신문이 일제히 집필자의 반박문을 게재하는등 연말 발간을 앞둔 군지에 전과 다른 관심을 보였다.

13년만에 다시 편찬되는 좧당진군의 대표적인 역사서좩이면서도 군민과 담을 쌓은 상태에서 집필자 몇사람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군지편찬사업은 이번을 계기로 좀더 폭넓은 논의와 조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검증되었다고 보며 주민들 사이에 처음으로 공개적인 논의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이점은 본지가 이 문제를 취재쪾보도한 취지이기도 하며 앞으로 보다 공개적인 집필과정을 통해 역사적인 진실에 근접한 군지가 편찬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편 이번 군지인물편에 대한 논란의 전개과정은 우리지역사회의 척박한 비판쪾토론문화와 학문에 대한 독점적인 권위의식, 일부 지역언론의 공익성을 뒤로 한 보도가 발견된 뼈아픈 계기이기도 했다.

비판을 ‘비난과 명예훼손’으로, 관점의 차이를 ‘누구의 사주를 받은 허위날조’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이번 군지인물편 기사자체를 부정하며 ‘다 알지 못하면 입을 열지말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어떤 특정인만이 말할 자격이 있다’는 소위 학문과 연구에 대한 독점적(독선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이며 따라서 언론에 주어진 고유한 비판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언론의 기능을 부정하는 언론공격성 반박문을 일부 지역언론이 많게는 두개의 지면전체를, 적게는 원고 13매를 기꺼이 할애해 그대로 게재했다는 사실은 유감스러웠다.

더구나 본지가 당사자의 반론권을 보장해 본인의 반박문을 그대로 게재했는데도 그뒤에 또다시 다른 지역신문을 통해 해당기사와 당진시대를 비난한 것은 공익을 위한 보도행위였다고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본지는 군지인물편 관련기사가 본래의 순수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세련되지 못한 보도로 일부 독자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당진시대를 아끼고 또한 지역언론의 성장을 기대해온 많은 독자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더이상 오해에서 비롯된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당진시대 140호(9월 9일자) 9면, 당진뉴스 255호(9월 5일자) 10~11면, 당진신문 167호(9월 14일자) 5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당진시대를 비난한 집필자의 주장을 참고로 다시한번 차분히 당시의 쟁점을 점검하며 논란을 마무리하려 한다.

12개 분야중 좧인물편좩을 보도한 이유

당진군은 94년 4월부터 3개년계획으로 군지편찬사업을 시작, 올 7월말까지 감수까지 마무리하고 곧바로 발간에 들어가 올 11월 발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3년만에 발간될 예정이던 군지는 유독 좧인물편좩에 대해 감수자가 유보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더이상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었다. 때는 이미 감수마무리 기한인 7월말을 지나 8월로 접어든 뒤였다.

감수자는 ‘생몰연대미상인 경우가 지나치게 많고, 당진과 관련없는 사실이 많다’는 문제를 지적하며 감수확인 도장도 찍지 않은 채 원고를 당진에 돌려보냈던 것이다.

군 관계자들은 이미 기한을 넘긴 상태에서 보완책 마련에 다급했다. 이 와중에서 본지는 이 사실을 접하고 원고를 열람한 뒤 감수자가 지적한 문제를 비롯해 인물편의 문제점을 취재쪾보도한 것이다.

그런데 집필자의 반박은 본지가 인물편을 취재한 것이 이유없고 악의적이며 게다가 특정인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고 왜곡하고 있어 이를 바로잡는다.

‘군지가 당진의 자존심’인 이유

군지는 군의 역사서이자 군의 자존심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군지 조사쪾집필내용이 충실해서 누가봐도 허술하지 않아야 한다.

둘째는 일반적인 사실뿐만 아니라 역사속에 가려진 지역적인 사실과 인물을 더깊이 발굴해내야 한다.

어딘지 조사한 흔적이 미비하고, 기존의 문헌중에서 당진지명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군지의 자존심, 나아가 군의 자존심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보았다.

집필자의 반박은 ‘자존심’의 뜻을 선인(善人)만을 실어야 한다는 뜻으로 곡해하고 있어 바로잡는다. 노태우, 전두환과 같은 인물도 ‘인물’이라는 집필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물이 너무 많고

조사가 부족하다고 한 이유

집필자는 예상매수 9백매를 훨씬 초과해 1천4백매의 원고를 썼다. 인물은 총 926명이다. 물론 혼자서 이만한 분량의 원고를 썼다는 것과 그 열정에 대해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양이 많은 대신 각 인물마다 조사된 사항이 매우 빈약하다.

총 4권에 이르는 원고중 3권 좧ㅇ좩씨편 한권만 봐도 245여명중 생몰연대미상이 2백명이 넘고 있다. 조금만 더 조사하면 알 수 있는 주요인물이나 최근 사망자들조차도 생몰연대미상이다. 한 예로 당진중학교 설립자 양재억씨도 연대미상으로 되어있다.

몰론 선정기준이상의 모든 인물이 다뤄졌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이며 더욱 상세한 조사는 다음 집필자의 몫일 수도 있으나 누락되었거나 누락되었다고 보여지는 인물이 많다.

그렇다면 선정범위를 어느선에서 한정하고 기준에 합당한 인물을 보다 깊이 조사하는 것이 역사연구의 책임있는 자세라고 본다. 현지조사는 뒤로 한 채 대부분을 기존문헌에서 발췌한 것을 ‘조사부족’이라고 한 것이다. 이를 ‘거짓말’이라고 한 집필자의 주장을 바로 잡는다.

역대 읍면장중 여러명이 빠진 이유

본지가 임의적으로 당진읍과 대호지면만을 상대로 좧사망한 역대읍쪾면장좩을 조사한 결과 집필자의 원고에는 대호지면장중 2대 김동운, 4대 최병학, 11대 직대 차갑순, 17대 임시재씨등 4명이 누락돼 있다. 당진읍에서는에 9대와 12대 당진 면장을 지낸 유진원씨의 12대 재임사실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읍면에서 보관중인 현황 자료의 재임기간과 집필자 원고의 재임기간이 모두 다르다. 본사 자료수집은 잠깐만에 읍면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2년 가까운 집필자의 조사집필기간중 최소한 읍면사무소에 대한 기초조사도 하지 않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누락된 읍면장의 이름을 기사에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믿을 수 없는 추측기사’라고 한 집필자의 주장을 바로잡는다.

인물선정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이유

당진읍에는 1943년부터 45년까지 牟田次郞이라는 일본인이 8대 면장으로 재임한 바 있다. 이왕 집필자가 모든 관직에 있었던 인물을 수록하기로 기준을 세우고 내외국인의 차별을 선정기준으로 정하지 않았으므로 이 인물도 수록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으나 이 인물 역시 빠져있다.

또 본지기사에서 역대 현감군수가 3백여명이고, 교장이 50명선이라고 한 것은 비율을 따진 것이 아니라 학교현장조사를 했더라면 역대교장이 당연히 50명은 넘었을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또 한가지, 인물선정기준에는 ‘교감이상’이라고 했으나 교감은 수록되지 않았으며 기준에 없는 평교사 이교순[생몰연대미상, 1908년 설립된 면양학교(현재 면천초교) 훈도(교사)로 근무했다]은 유일하게 수록되어 있다.

본지는 이 기준적용에 일관성이 없는점을 지적한 것이다.

수록 우선순위 있어야

이처럼 누락되거나 일관성없이 수록된 인물이 있음을 볼 때 보다 엄정한 선정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테면 물의없이 재임한 공직자는 빠져있고, 근무상태불량으로 경질된 공직자(예;안유제, 유적기)를 우선 수록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필자는 이에 대한 반박으로 반란자 이몽학이나 전두환, 노태우를 역사속의 인물에서 제외할 수 없다고 했으나 엄연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과 ‘근무상태불량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내용이 전혀없는 인물’을 동일시하는 것은 타당한 주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견훤을 다룬다면 박정희도 다뤄야

집필자는 당진과 깊은 인연이 있는 인물을 찾자면 몇명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합덕방죽과 관련된 견훤을 ‘당진의 인물’로 원고지 수매에 걸쳐 소개한다면 역사적으로 삽교천 방조제 축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박정희도 당진의 인물로 다룰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 부분에 대해 군은 견훤을 좧인물편좩이 아니라 좧전설편좩이나 좧민속편좩으로 옮겨 수록하기로 했다.

‘당진관련사실 위주로’ - 감수자

고대의 저명문인이나 학자는 어느 문헌을 보나 소상히 소개되어있다. 그런데도 이제현, 박지원, 이색등 많은 인물이 당진과의 인연뿐만 아니라 일대기에 걸쳐 소개되어 원고지 7~9매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감수자도 ‘당진관련 사실위주로 수록할 것’을 감수의견으로 제시했다.

문화재편 관련 주장에 대해

본지는 137호에서 ‘인물편이 양적으로 방대하면서도 사실조사가 미비한 것은 어려운 작업을 한사람에게 모두 일임해버린 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서 ‘같은 분량에 논란의 소지가 훨씬 적은데도 충분한 조사를 위해 5명이 분담한 문화재편과 대조적이다’(문화재편 언급부분은 이것이 전부임)라고 보도했다.

이것은 사전예방책에 관한 이야기이지 집필결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집필자는 본지가 ‘문화재편이 완전무결하다고 찬양했다’는 말에 원고의 대부분을 할애하며 여기에서 문화재 집필자로부터 악의적인 ‘사주와 배후조종을 받아 기사를 썼다’는 추론을 이끌어 냈다. 이를 바로잡는다.

한편 문화재편 집필자중 한사람인 윤성의씨는 “역대문헌을 참고로 하되 현장확인과 실측을 통해 사실위주로 수록했으며, 실증이 불가능한 문화재까지 문헌을 발췌해 수록하는 것은 오늘날의 군지로서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고 문화재 수록기준을 밝혔다.

군 뒤늦게나마 보완작업 들어가

그러나 군지편찬사업의 시행자인 군은 본지 기사에서 제기된 문제점(감수자의 의견포함)을 보완하기 위해 뒤늦게나마 몇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군에 따르면 첫째, 9월말까지를 기초조사기간으로 잡고 각읍면과 학교, 경찰서등에 협조공문을 보내 현지 자료수집에 들어갔다.

둘째, 공적이나 업적이 나타나지 않은 인물은 최대한 내용을 보완하기로 했다.

세째, 특별한 공과없이 재임기간만 나타난 인물은 좧기타좩란에 별도로 수록하기로 했다.

네째, 수록된 인물에 대해서는 발췌자료를 명시하기로 했다.

다섯째, 방대한 인물선정기준중 극히 인원이 제한되고 시대적으로 원숙하지 않은 부분은 일단 제외하기로 했다.(예, 유치원 원장)

여섯째, 견훤은 좧전설편좩 또는 좧민속편좩에 수록하기로 했다.

한편 이 수정보완작업은 집필자가 다시 맡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남는 문제에 대하여

어떤 역사서이건 현지확인과 사실확인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역사적 고증의 첫걸음이자 마지막 점검단계라고 본다.

인물편 집필의 첫번째 단계는 각 기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친회로부터 현지 인물기록과 구전을 입수하는 일이어야 했다. 그렇게해서 그 시대의 일반론 속에 들어가 내용을 1, 2차 검증한 뒤 다시 주민열람을 통해 재검토됐어야 한다. 그러나 이 공개적인 확인과정을 모두 생략되었다.

아무리 탁월한 개인이라도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검증과정없이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 그 책임을 집필자가 혼자서 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음번 군지는 보다 개방된 분위기와 논의속에서 이루어지길, 그리고 이번과 같은 소모적인 비방도 지성적인 토론문화로 한차원 발전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