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인 봉합덕 백제가축병원장
“배움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는 전리품”
만공(滿空)스님은 한국불교의 3대 문중의 하나인 덕숭문중 수덕사 주지스님으로 일제치하에서 한국인과 한국불교의 식민지 사관을 통쾌하게 비판하고 저항하였던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었다.
수덕사는 만공스님의 대를 이어 벽초스님, 원담방장스님, 현주지스님인 법장스님으로 년년 대를 이어 오는 큰 사찰문중이다.
벽초스님이 노년기에 덕숭산 중턱에 자리한 정혜사로 거처를 옮겨 계실 때 필자는 매일 아침 산책겸 스님의 가르침을 얻고자 정혜사를 찾았다. 그때 벽초스님은 “서처사, 여기까지 올라올때 걸음걸이가 어떠하였소”하고 묻곤하시었다. 20년전 장년시절이라 “반은 걷고 반은 뛰어 올라왔습니다”하면 큰 호통을 치시었다.
“걸음걸이를 가볍게 하시오. 만일 뛰다가 땅에 기어다니는 미물이라도 밟혀 죽었다면 그것도 살생하는 것이지요”
지금 온나라에 빅뉴스로 조명되는 대학교수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에 탐을 내어 며칠동안 마음속에 비수를 품고 다니다가 결국에 몸으로 그 비수를 날려 72세인 아버지를 북망산의 먼 여행길을 떠나게 했던 패륜아이다.!
우리들의 핏줄기 속에는 부모의 혼이 깃들이고 나의 생명속에는 조부모의 얼이 담겨있고 나의 존재 속에는 조상의 넋이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태산보다 큰 은혜와 어머니의 바다보다도 깊은 사랑속에서 우리들은 양육되었고 성장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부모의 분신이다. 생명을 낳아서 기르고 키우기 위하여 부모들이 얼마나 애를 쓰고 얼마나 고생하고 얼마나 정성을 쏟았겠는가. 그렇게 자기를 낳고 기르신 아버지를.
김인봉씨!
합덕에서 백제가축병원을 개업한지 15년이 지났다. 아직 40대 초반의 젊음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지만 자기의 배움을 최대한으로 성실하게 가꾸어가면서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축산인들과 이웃들에게 좀 더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자기의 지식을 나누어 갖고져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는 원장이다.
자기 사업소에 축산인의 사랑방을 설치하여 축산인들에게 성실함과 겸손함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전달하며 보살피면서 꿈을 현실로 옮겨가고 있는 사람이다.
비옥한 땅은 버려진 채로도 언제나 짓밟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그것은 침묵함으로써 요란스럽지도 않고 어둡지만 어떤 씨앗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씨앗에 양분과 생명을 줄 준비가 완비되어 있는 것이다. 더 낮게 있을수록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은 이 땅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진실로 더욱 비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인구밀도는 가히 세계적이다. 메달권에 드는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엉켜살고 있는데 유별나게 지역적 감정을 노출시켜 편을 갈라놓는 경향이 심하다는 느낌이다. 지난번 모 단체장 선거때도 그 사람은 합덕출신이 아니기에 구설수에 올랐던 것을 보았다. 합덕인구 1만6천여명중 순수 합덕 출생자가 몇 %나 자리를 잡고 있는지 우리모두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김인봉씨는 금년들어 서야중고등학교 육성회장을 맡았다. 이곳의 2세 교육에 물심양면으로 이바지함이 클 것으로 기대해보는 사람이 많이 있다.
“2세 교육은 가정, 학교, 사회에서 함께 교육하는 것이지요. 특히 가정에서 부모가 인성교육에 있어 본보기로 어른들의 바른 삶이 우선된다”고 하면서 “재가(再嫁)의 근본으로 부모자식이 서로 돈독하고 형제간에 서로 화목하고 부부사이에 화평하면 그 집안은 잘된다” 고 예기(禮記)를 인용하면서 가정교육을 강조한다.
김인봉씨는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보건학을 전공하여 1992년도에 석사학위를 받은 열성적인 학구파이다. 그의 석사학위 논문집 끝맺음은 아래와 같이 써 내려간다.
“대학을 졸업한지 어언 18년, 이곳 합덕에서 서울까지 왕복 300km를 오가며 겪은 피곤했던 날들이 기억되는 시간입니다. 무수한 시간속에서 이 한권의 책이 묶어졌다는 사실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쟁취한 전리품일지도 모릅니다. 배움의 길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단순하고 순조로운 과정만이 아닌 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시한번 그 길로 접어들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비록 그 길이 멀고 험난하다 할지라도...”
김인봉씨는 형설의공을 몸으로, 발로 일구어 낸 사람이다. 사업에서 바쁜시간을 쪼개어 서울을 오가면서 대학원을 다녔던 것이다.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없듯이 금년 학기부터 공주전문대학 응급처치학과에서 해부학 강의를 맡아 후진양성을 하고 있다.
첫 교단에서 대학생들에게 어떤 얘기를 했느냐는 질문에 “인생은 3개 주기로 구분할 수 있다. 매 주기 20년으로 하여 첫번째 주기는 공부하고 연구하는 시기이고, 두번째는 배우고 연구한 것을 사회에서 실천하는 단계이고, 세번째 주기는 실천한 것을 정리하고 마무리 하는 단계이다. 모두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여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살아야 된다”고 하였단다.
사람에게 있어서 직업은 등뼈와 같다. 인간은 206개의 뼈를 갖고 있는데 뼈중에 가장 중요한 뼈는 등뼈다. 인간의 오장육부는 등뼈에 붙어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직업도 등뼈와 같은 위치, 등뼈와 같은 기능, 등뼈와 같은 중요성을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