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금리 마을서 인생 백세 넘는다
김흥옥 할머니 합덕 옥금리 (100세)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신체에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 변화가 곧 노화현상이며 생리적인 현상인 것이다. 이렇게 노쇠하여 사망하는데 사람은 몇살까지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건강하게 노년기를 살아갈 수 있겠는가의 문제를 연구하는 것을 노년학(Gerontology)이라고 한다.
부흔 옛학자들은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학설을 이미 펴낸 바 있다. 이 당시의 보통 수명은 35세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세에 와서 독일의 코흐나 불란서의 파스퇴르에 의하여 세균이 발견되고 전염병이 예방되게 되자 사람의 수명은 급격히 연장되었으며, 영국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명과 독일에서 도막이 설파제을 발견하면서 노인에게 많았던 호흡기 전염병(특히 폐렴)에 의하여 사망하는 사람이 격감하여 각종 질병의 예방과 수술에 의한 후유증이 격감됨으로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높아졌다.
우리나라에도 여자 76세, 남자 72세의 고령화의 평균수명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평균수명은 점점 높아질 조짐이 있다. 성서에는 120세까지 살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6, 3)
모든 사람은 늙으면 죽는다. 늙지 않은 사람은 없고 죽지 않은 인간이 없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생명의 철칙이며, 대자연의 섭리요, 우주의 질서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언제 죽는다는 것은 정말로 불확실한 것중 하나이다.
우리들은 61세를 회갑(환갑)이라고 한다. 30년전만 하여도 회갑을 지내며 장수한다고 하였다. 회갑잔치를 일생에 큰잔치로 생각했던 시절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근래에는 회갑을 지내도 법적 노인측에 끼지도 못한다. 국가에서 정한 노인은 만 65세부터인 것이다.
70세를 고희(古稀)라고 부르는 것은 당나라의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時)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란 구절에서 유래하였는데 옛날에는 70세를 사는 사람이 무척 드물었던 것이다.
77세를 희수(喜壽)라고 부른다. 80세를 산수(傘壽)라고 하며, 88세를 미수(米壽)라고 한다. 쌀미(米)를 분석하면 88이 되는 것이다. 90세를 졸수(卒壽)라고 하며 99세를 백수(白壽)라고 하는데 일백(百)자에서 一를 빼면 99가 되고 흰백(白)자가 되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늙으면 애들이 된다고 한다. 두뇌의 기능이나 육체적인 기능이 노쇠해서 애들과 같은 단순한 생각과 행동을 하기 때문에 애들과 같다고 말을 하는데 “어린이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 3)라고 성서에 기록했으니 늙어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기위해 어린이 같이 되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며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한 말씀에 의해 천국의 주인이 되기위해 늙어지면 어린이 같이 되는 것이라고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김흥옥 할머니!
김흥옥 할머니는 1896년생으로 금년에 만 100세가 되시는 분으로 합덕읍 옥금리에 거주하신다.
여기서 1896년대의 우리나라의 역사를 잠시 살펴본다. 대원군의 섭정과 쇄국정책이 무너졌고, 동학혁명도 일단락 수습이 된후 친일파, 친로파, 수구파등 서로 갈리어 세력을 확장할쯤, 왕실이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을 하게 되었고, 3월에는 미국인 제임스 몰스에게 경인철도 부설권을 허가했으며, 4월에는 서재필 박사가 처음으로 독립신문을 발간한 해였다.
7월에는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11월에는 독립문을 영은문 자리에 세웠다. 서재필 박사를 위시한 우국지사들이 나라의 자주, 자조독립을 절감하여 행동으로 옮긴 해인 것이다. 꼭 백년전의 일들이다.
옥금리 이장 박성서님의 친철한 안내로 김흥옥 할머니댁을 찾았는데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방에 앉아서 TV를 시청하신다. 재미있느냐고 물으니 “심심하니까 보는 것이지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대답하시는 김흥옥 할머니는 100세의 년치에도 귀도, 눈도 거의 정상에 가까운데 또 놀랐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바깥출입도 하며 때로는 300m 떨어진 예배당에도 가시는데 요즘은 잘 안가신다면서 예배가 끝나면 젊은 사람들이 업고오는 통에 미안도 하고 쑥스럽다고도 하신다.
김흥옥 할머니는 신평면 신송리에서 13세때 시집와서 옥금리 마을에서 87년째 살고 계시다. 40여년전 영감님을 사별하고 한많고 고달픈 젊음을 살려보내면서도 오늘도 건강하고 명랑하게, 그러나 스스로 낳은 자식은 한사람도 없는 자책감에서인지 시집의 대소사에 모든 정성을 다해 묵묵히 살고 계셨던 것이다.
인생을 성실하게 열심히 산 사람만이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두게 된다. 인간은 노력한만큼 보답을 받게 된다.
김흥옥 할머니는 시숙의 아들인 조카 김구식, 김제수 젊은 내외가 모시고 있다. 즉 김씨내외의 큰어머님이시다. 박성서 옥금리 이장님은 김구식 내외의 칭찬이 대단하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자기 부모님도 안모시고 사는데 큰어머님을 정성을 다해 봉양하고 있다고 귀뜸해준다.
작년에는 김흥옥 할머니의 백수(99세) 잔치를 해드려 옥금리 온마을에 경사스러운 행사가 이어졌었다.
거문고 소리가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맑고 총명한 소리와 같다고 옥금리(玉琴里)라고 지명을 붙였는가 필자는 생각해본다. 마을 사람들 전부가 인심좋고 화합하면서 사는 내고향 옥금리!
“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가 이번회로 100회를 맞는다. 100세의 김흥옥 할머니의 글을 쓰게됨을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