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대학 선서에서 울어버린 모정
윤 태 분 우강농협 주부대학 학생장, 우강면 송산리 1구 부녀회장
작년 11월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전국 남녀 1천5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업인들에 대한 윤리수준평가”에서 정직성과 윤리성에서 최하위, 즉 꼴찌를 기록한 것이 국회의원들이었다.
내달 4월 11`일은 15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일이다. 그래서 요즘 선량을 자처하고 저마다 얼굴 알리기위해 거리에 나와 웃음을 잔뜩 입에 물고 악수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거리의 행인들, 노점상인들 보는 사람들마다 악수사례를 퍼붓는 것이다.
몇차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는 사람의 얘기로는 행인들과 악수할 때 저사람이 나에게 표를 찍어 줄 사람인지 아닌지를 느낌으로 가려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직업적인 정치인의 실토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눌 때 “정직성과 윤리성에 앞으로는 제일 웃자리는 못해도 중간쯤으로는 가겠습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인사를 한다면 틀림없이 만족할만한 표를 얻을 것이다. 또 유권자들도 마음을 다하는 정성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신뢰의 악수를 나눌때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길이 있다. 인생은 나그네길, 산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나그네의 길을 어떻게 종착지까지 가느냐의 따라 양(良)과 불량(不良)의 판결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선량후보지망생들은 이제부터라도 악수를 나눌 때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사는 사람들의 치유를 위해 그분들의 슬픔을 덜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손을 잡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애정의 손에 손을 잡아야 되겠다.
윤태분씨!
윤태분씨는 3월 6일 우강농협이 주최한 제1기 주부대학 개학식에서 학생장으로 118명의 주부대학생을 대표해서 선서를 하였다. 선서중 좧3, 우리는 주부대학을 통하여 가족사랑, 이웃사랑...좩하는 대목에서 눈물이 쏟아져 더이상 끝을 맺지못하다가 한참후에 선서를 끝낼 수 있었다.
윤태분씨는 자기만의 인생의 길이 있었고 남다른 자녀들의 사랑에 가슴 한구석에 맺혀있던 한이 터져나와 억제를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가슴이 미어졌던 것이다. 지금은 생활에 별 어려움없이 지낸다.
건강하고 성실한 남편과 아들딸을 슬하에 둔 어머니로서 아담하게 단장된 양옥집도 있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윤태분씨가 30년간 손과 발이 닳도록 노력한 댓가이며 작으나 이웃들에게 봉사한 결과의 쌓음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윤태분씨의 고향은 경기도 김포였다. 22세때 우강면 송산리로 시집을 오게된다. 친정이 풍요롭게 사는 집안은 아니었지만 논밭일을 안하면서 귀엽게 자란 처지였다. 송산리로 시집온 후로 농사일을 처음하였는데 제대로 가꾸어지는 것도 없으며 힘만 들었고 가난한 신첩살림이라 어렵고 고달픈 생활만 계속되었던 것이다.
아들들을 키우면서 애들의 자라나는 모습과 재롱 떠는 재미로 시름을 달래가며 살쯤 작은아들 철이(편이상 가명)가 세살 때부터 남편따라 돈벌이를 시작했다. 소몰이꾼으로 나섰던 것이다. 20년전만 해도 지금과 같이 자동차가 많지 않았다. 소를 팔릭위해서는 걸어서 끌고가야 했다.
윤태분씨는 장에 팔 소를 주인대신 몰고 주인이 원하는 장으로 끌어다 주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당시 소 한마리를 장에 끌어다주는 품값으로 마리당 7백원을 받았다. 한번에 많으면 3마리 정도로 온양, 삽교, 당진, 고덕등 장으로 매일 새벽 3시에 별빛을 따라 소를 몰고갔다 사막의 캬라반 같이 새벽을 설쳤던 것이다.
새벽 3시경 남편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면 세살짜리 철이가 “엄마”하고 울음을 터트리면서 먼저 일어난다. 같이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우는 꼬마녀석을 달래고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가히 짐작이 간다. 서너시간이 걸려 온양장에 닿을 수 있다. 소몰이꾼 10년을 하루같이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허기져 물로 배를 채우고 발에 물집이 생겨 억지로 끌고 가는 발을 무릅쓰고 윤태분씨 자신의 몸은 어찌되었던 간에 참고 견디어냈는데 다른 마을에서 “엄마”하고 울고 있는 어린이를 보았을 때는 참기가 어려웠다. 집에 두고온 세살짜리의 철이의 모습이 마음에, 머리에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인륜의 어머니의 사랑이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그런 철이가 작년에 24세가 되어 불행을 당했다. 교통사고로 먼저 먼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 마음 깊은 곳에 아들에 대한 한이 응어리져 맺혀있다. 그 한의 응어리가 주부대학에서 선서할 때 억누를 사이도 없이 터져나왔던 것이다.
윤태분씨는 한을 가슴에 품고 살지는 않는다. 또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나타나듯 금년 2월에 큰아들이 직장을 다니면서 방송통신대학 행정과 학사의 사각모를 썼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어머니의 정에 또 울었단다.
윤태분씨는 예금의 당위성을 논한다. 쓸것을 절약하여 예금하는 것이 가치있는 돈이지 많이 가진 것중에 일부를 저금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그래서 큰아들이 학교재학중에는 늘 저축상을 받게 하였다. 고등학교 졸업때 저축액이 1백만원을 넘겼다. 이 돈으로 암소를 사서 키웠다. 9년째인 지금은 어미소 6마리, 송아지 4마리의 대가족을 이루는 경사스러움을 맞고 있는 것이다.
윤태분씨는 송산1구의 부녀회장 7년를 해냈으며 2년째 우강면 부녀협회장도 맡고 있다. 작년에 아들의 사고로 침체된 한을 털고 일어나 부녀회장으로, 또 주부대학 학생장의 역할이 기대되는 것이다.
윤태분씨는 우리의 영원한 고향인 농촌의 애향심을 가지고 농촌발전에 초석이 되고 젊은 주부들에게 귀감이 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