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읍성
옛선조들 가슴으로 쌓은 성
전문가 고증거쳐 복원해야
물이 가득 모여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는 고사(古事)에서 따내어 면천(沔川)이란 이름을 얻은 곳이 오늘날의 면천읍성이다.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2천년전쯤인 백제시대부터 자리잡은 긴 역사의 고을이 바로 면천이다.
몽산의 어깨를 살며시 누르며 얼굴을 드러낸 아미산 남쪽에 자리잡은 면천읍성은 조물주가 창조한 자연의 짙푸른 녹색으로 사방을 감고 있어 시원함과 평화스러움을 담은 곳이기도 하다. 옛고을답게 향교가 있고 산속에서는 절집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도 면천인 것이다.
읍성안에는 옛모습을 복원하여 군자지(君子池)에 군자정을 지어놓고 멋스러운 옛님들의 향취를 맛보게 하였으나 연잎은 한 뿌리도 보이지 않고 모타를 돌려 외줄기 분수가 물을 뿜고 있어 괴이하고 당혹감을 나그네들에게 주고 있으니 입이 벌어진다.
군자정 바로 웃자리에는 전설이 깃든 안샘이 1995년에 복원했다고 검은 돌에 안내판을 세웠으나 우물의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고 있다. 그것도 샘에는 묵직한 돌로 덮개를 씌워 자물통을 매달아 두었으니 어떻게 한다는 설명문도 없이 오직 이 샘물이 아니면 두견주(杜鵑酒)가 제맛을 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지금도 이 샘물로 면천의 향토주 두견술을 빚는다는 것인지 아니면 전설속에서 그러했다는 것인지 초행자에게는 도무지 알 길이 없게 되어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두견주가 면천의 민속주로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니 천만 다행인 것이다.
복원(復元)이란 옛부터 있던 것을 그대로 다시 만들어 놓는 것을 말한다. 특히 민족문화재를 복원한다는 것은 돈 몇푼 들여 간단하게 해치울 수 없는 것이다. 역사를 주민의식 속에 되살리고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되살려 주어 우리고장 전통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시켜주는데 그 큰 뜻을 두었다면 성곽 축조에는 문화재 복원위원회의 고증과 각계각층의 전문인들의 자문을 얻어 성곽을 복원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돌을 쌓아올린 30m의 성은 임시적으로 쌓았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보기 싫어 옛성곽 복원이란 뜻과는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엉성한 돌담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 빨리 다시 원형을 유지시키는 복원이 필요하며 비록 단편이나마 면천읍성의 면모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
옛 선조들은 무거운 돌로 성을 쌓으면서도 가슴으로 성을 구축하였지만 지금의 돌 쌓기는 기계적으로 돌을 올려 놓았으니 모양이나 생김새가 들쭉날쭉 보기에 무척 민망스러운 것이다. 필자의 욕심이고 꿈속의 꿈이지만 안동의 하회마을이나 전남의 낙안성과 같이 면천읍성도 수백년전의 읍성으로 복원하여 오늘의 사는 우리들에게 볼거리와 체험을 제공하여 옛조상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삶의 교육장으로 복원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꿈을 꿈으로 간직함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의 지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속에 내용은 저버리고 형식만 차리다가 형식이 변형되면서 나중엔 그 본뜻을 잃어버리고 마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것도 생각해야 될 것이다.
서양의 빌헬름 1세는 아첨을 하는 자들에게 비꼬는 말을 잘했다. 어느날 황제는 “키다리 병사”의 그림을 그리다가 시종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 그림이 얼마에 팔리겠는가?” 갑작스런 질문에 시종은 잠깐 표정이 흔들리더니 이내 낯빛을 부드럽게 고치며 아첨했다. “1백달러를 받아도 싼편으로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즐겁게 웃어대더니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내 그대에게 50달러에 주지. 자네 내 그림을 이해하는구먼.”
이것은 아첨의 뒤끝에는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가 따른다는 뜻으로 우리들이 이해하고 있는 한 토막의 해학인 것이다.
모든 공무원들은 봉사자들이다. 국민을 다스리는 관리자가 아닌 것이다. 국민을 주인으로 받아들여 영접하는 마음자세로 일거일동이 한결 같아야 한다. 봉건시대에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지금도 자행된다고 한다면 이런 것들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다.
면천성곽 앞에는 자연석으로 몇개의 비망비가 세워졌는데 어느 것은 꼭 이조시대에 세운 것과 다름없는 것도 있다. 나그네들이 돌아보면서 “옥에 티군.”하는 소리에 안내자는 낯이 붉어지며 어떻게 설명할까 망설여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