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당시 박상진·차준희 씨 부부는 깔판포구에서 잡은 꽃새우를 말려 합덕에 위치한 상회에 팔았다. 지금도 김장철 배추 파동 등 농산물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문제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단다. 더군다나 도량형이 명확지 않고 판로가 많지 않아 어민들은 상인들의 주먹구구식 셈법을 알면서도 속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날그날 달라. 예를 들어 물건이 적으면 조금씩 달고, 물량이 많으면 많이씩 담지. 물량이 많으면 사람들이 보고도 안 사거든. 그러니까 많이씩 담아줘야 겨우 사가잖어. 그러니 얼른 치우려고 많이씩 담는 거지. 지금은 kg 단위로 무게를 다니까 공정하지만, 그때는 판로며 뭐며 모든 게 공정하지가 안했어.” (박상진)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길이·부피·무게 등의 단위를 재는 도량형이 명확하지 않았다. 이를 테면 되·말 등의 무게가 제각각 달랐던 것이다. 이에 정부는 1961년 ‘계량법’을 제정, 1963년부터 정부 및 관련 기관의 업무나 각종 증빙에 쓰이는 계량 단위에 대해 미터법을 사용하도록 정하고 ‘미터법 통일운동’을 펼쳤다. 1964년부터는 척관법, 야드·파운드법 사용이 전면 금지됨으로써 복잡한 도량형 단위의 통일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농민신문 ‘[알쏭달쏭 용어풀이] 도량형’ 기사 참조)
교통편도 좋지 않던 시절, 박상진 씨는 말린 새우를 지게에 지고 새벽길을 걸었다. 새우를 팔고 돌아오는 길에도 지게 때문에 버스를 타지 못해, 다시 깔판포구에 있는 집까지 걸어왔다. 말린 새우를 당진시장까지 팔러 가는 날이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를 꼬박 길 위에서 보내야 했다.
“아, 말도 마. 나는 우리 큰딸 업고서는 첫차 타고 쫒아가서 새우 말린 거 들고 그랬어. 물건은 경운기로 실어 가고 사람은 버스로 따라 가는 거지.” (차준희)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