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를 전후로 깔판포구에서는 맷돌포구와 마찬가지로 새우잡이가 주를 이뤘다. 특히 봄철에 잡아 올리는 꽃새우가 유명했다.
“강화도 배들이 꽃새우를 잡으러 이리 온 거야. 뭐 몇십 척이 왔지. 여기 와가지고 그쪽 깔판에서 새우를 말렸다고.” (노이석)
“새우젓 담그는 새우가 따로 있고, 말리는 건 봄에 꽃새우랑 대떼기를 말렸어. 진달래꽃 필 때 꽃새우를 잡는 거야. 빨간 거. 그걸 보고 꽃새우라고 그러지.” (차준희)
“지금도 시장에 가면 말려서 파는 새우 중에 빨간 게 있잖어, 그게 꽃새우고 또 하얗게 말린 거 그걸 대떼기라고 그려. 그리고 또 그거보다 얇은 새우를 젓 담는 젓새우라 하고.” (박상진)
당시에는 길이며 산, 밭의 둑 같이 공터마다 새우를 말렸단다.
“아이고 말도 마. 가마니 그걸 이렇게 짜서 가운데 꼬맨 거, 그거에 새우를 널어, 어지간히 말랐을 때 막 때려서 털어가지고. 그것도 너무 오래 말리면 안 돼. 빛깔이 변하니까. 저녁 때 되면 그걸 바람으로 들이는 거야. 그렇게 해서 합덕 상회로, 경기도로 실어 보내지, 쌀가마니째. 90kg짜리 쌀푸대 있잖아. 거기다 하나씩 담아서 묶어 보내고. 우리는 버스 타고 따라 가는 거야. 그럼 상회에 가서 인제 말을 대는데, 주인 마음대로야.” (차준희)
“그때는 판로도 그렇고 모든 게 공정하지가 않았지.” (박상진)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