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도는 합덕읍 옥금리 삽교천변 구양도다리 바로 옆에 있던 여객선 기항지이다. 전에 대양기선 구양도지소장이었던 안효정 씨에 의하면 옛날에는 삽교천을 이용하여 인천-한진-맷돌포-공포(운정포)-남원포-부리포-방아개나루(아산)-선장(아산)-구양도-댓골-삼호(시거리)-구만포(덕산)-포내까지 다녔다 한다.
한국전쟁 이전인 40~50년 전에는 인천-구만포까지 주로 쌀을 싣는 배가 다녔고, 상류인 포내까지는 새우젓배가 다녔다. 이 당시 구양도에 다니던 여객선은 신흥호, 한성호가 있었다. 들사람들이 구양도 다리밑에서 곤쟁이를 잡아서 예산 공주, 청양 산간 부락에 가서 콩, 목화, 감자, 밤 등과 교환해서 사용했다 한다.
이 당시 구양도로 배 타러 오는 사람들은 주로 면천, 순성, 신암면 신택리, 신종리, 덕산면 구산리 사람들이다. 후에는 토사의 퇴적으로 배가 다닐 수 없게 되었다.
38년생 원종성 씨는 구양도에서 나고 자랐다. 구양도 다리 건설에도 참여했으며 한국전쟁도 구양도에서 겪었다.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린 시절 구양도포구로 배가 드나들고 갯벌에 나문쟁이가 지천이었던 풍경이다.
“그전엔 여기에 조수가 들락날락하니까 많은 배가 다녔죠. 저 들판에 나문재라는 게 많이 났었고. 황발이라고 발 커다란 거 있잖아, 황발이. 청게, 짱뚱어도 있었고. 여름에는 숭어 같은 물고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여기에 꽃게도 올라오고. 인천 앞바다에서 새우젓, 건어물 같은 거 싣고 돛단배가 와서 우리 주민들 상대로 팔고. 돈을 받는 게 아니라 곡식 쌀 같은 거 받아가고 가고 그랬죠.” (원종성)
우현선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