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Minimalism)은 세계 2차대전 이후 생존에 필요한 최소의 것만 사용하자는 의도로 시작됐다. 이후 한참 풍요로움과 방만함이 넘쳐나던 2000년대 초, 밀레니엄 시대에 진부하다 못해 고루한 미니멀리즘을 다시 주장한 기업이 있었으니 바로 현대 최첨단 스마트폰 시장을 이끄는 애플사였다. 애플은 미니멀리즘의 이론을 과거의 궁핍함이 아닌 디자인과 생산, 유통구조에 응용했다. 그리고 1년 주기로 바뀌던 당시 전자기기의 생성·소멸 패턴과는 전혀 다른 수년 앞을 내다 본 시리즈 상품들을 출고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아이팟 MP3, 아이폰 시리즈들이다.

농업은 그보다도 훨씬 더 속도가 느린 업종이다. 최근 들어서 급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품목을 바꾸기 위해서는 최소 파종부터 수확까지 수개월이 필요하다. 유통 구조가 전 세계로 열린 현대사회에서 농업 분야의 유행 좇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특정 품목의 유행이 감지되면 이미 계절이 반대인 지구 반대편에서 재배를 시작할 테고 우리 지역에서 재배하기 위해서는 내년에 그 시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당진 농업을 객관적인 수치로 보자면 1만 농가에 3만 농업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전답(田畓)의 비율은 2대 8 수준으로 전국 평균 5대 5 수준에 비해 확연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덕에 전국 최대의 쌀 생산지가 당진시가 됐다. 다만 우리 국민의 쌀 소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쌀 생산량 자랑’이 트랜드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당진시의 농업 현실이 애플사의 그것처럼 오래전부터 뚝심 있게 진행해 온 비전 공유의 결과물이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정 품목의 유행을 점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사상이나 패션의 흐름처럼 다음 물결을 기다리며 현재의 침체기를 견디는 것 역시 감나무 밑에서 익은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우둔한 전략이다. 그렇다고 국내 유수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최신화된 설비를 가지고 규모의 전면전을 치룬다는 것도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당진시의 농업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인가? 당진시는 서해안 교통의 요지로 농업과 공업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물류와 유통의 관점에서 뚜렷한 지리적·지역적 강점을 가지고 있다. 농업인과 관련 종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애플이 그랬듯 장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정교함일 것이다. 더불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가져야만 우리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중장기 관점을 목표로 정하고 단계적인 정비를 통해 상품력과 판매처를 확보한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 품종과 재배면적에 대한 연차적인 운영 목표를 정하고 각 단계의 장애물을 넘어서야 한다. 미리 예측이 가능해 극복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사전에 행정력과 예산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작년의 정책안을 동일하게 날짜만 바꾸어 운영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목표 지향의 견지에서 주제에 벗어나는 사업은 단계적으로 축소해야 하고 해당 농업 관계자들에게 다음 연도 정책의 방향성을 공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시에 연차별 목표 수준에 따라 필요한 설비를 예측하고 집중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외부 유통물류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경쟁하는 것이 옳다. 지역 농산물의 자체 소비가 불가능하고 사방의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현실에서 경쟁은 필연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농산물의 장단점을 알고 그에 맞는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기업에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임직원에게 비전을 선포하고 목표를 공유한다. 당진시 농업정책에 있어서도 유사한 비전 공유가 필요하다. 지역 내 농업 관계자들이 동일한 철학과 목표 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당진시 농업정책의 시작이 돼야 한다. 그 비전은 당진시의 실현 가능한 미래를 표현해야 하고 중장기 관점의 농업정책을 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솔깃한 트렌드는 전술로만 활용하되 트렌드를 이끄는 농업정책은 전략화 해야 할 것이다.

당진시는 농업에 대한 노하우와 열정 그리고 큰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당진시농업회의소를 통해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고 RPC 통합을 통해 쌀 경쟁력 강화를 계획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팜을 조성해 AI시대의 미래를 대비하고 청년의 농업 참여를 장려하고 있으며 지산지소(地産地消)를 위해 계속해서 로컬푸드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시로 작물의 시황·시세, 천재지변에 대비한 지원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다가오는 미래에 없어질 직업으로 화이트칼라(white-collar)와 사(士)자로 대변되던 좋은 직업군이 손꼽히고 있는 현실에서 농업 분야의 장래성을 낙관적으로 인식하고 아낌없는 투자와 정진을 지속해야할 것이다. 아울러 명확한 거버넌스 구성을 통해 정교화되고 체계를 갖춘 당진시 농업의 성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