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 사람들의 주요 생계수단이 맨손어업이었던 탓인지 1970년대만 해도 섬에는 개인이 소유한 배가 단 한 척도 없었단다. 채취한 해산물은 평택 만호리에서 온 배가 실어 갔다. 마을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행담분교에 근무하는 교사를 위해 교육청에서 마련해 준 목선 뿐이었다.

“선생들이 섬을 오갈 수 있도록 교육청에서 해준 목선이 하나 있었어요. 주로 그것을 이용했죠. 삽교천에서 유람선이 가끔 다녔는데, 불편해서 당시 당진군에 여러 번 요구해 도선이란 것이 생겼어요. 근데 뭐 그것도 주민을 위한 것이라더니 순전히 관광객 연결 목적으로 운영이 됐죠. 그러니 섬 사람들이 육지에 한 번 나가려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서 자연히 육지 사람들, 음섬이며 맷돌 사람들한테 신세를 많이 졌죠. 물때 맞춰서 조업 나가는 배들 있으면 사정해서 배를 빌려 타고 들어오고 그랬어요.”

그 시절은 또 왜 그리 추웠는지, 바다가 얼 정도였다. 바다가 얼어붙어 성에가 끼는 날이면 꼼짝없이 섬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헬기로 생필품을 나르는 일도 있었단다.

“헬기로다가 생필품 한 번 실어다 준 적 있어요. 그 헬기 타고 선생도 한 번 나갔던가 그런 적도 있고. 그게 조금 때 갑자기 추워지면 그랬죠. 성에가 밀려 나가면서 덮치고, 또 덮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얼음 두께가 말도 못해. 두께가 무릎까지 한 무릎 두께까지 들어갈 정도였어요.”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 우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