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도 현지 르뽀

개발로 황폐화된 섬 주민들의 위험한 선택

석문방조제·발전소로 어장 황폐화

더 이상 미래 없다고 젊은이들은 떠나고

안전하다는 한전 관계자의 말 그대로 믿어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탈출구로 선택

편집자 주// 지난 2월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국화도 주민 22명은 화성군 지역경제과에 핵폐기물 처리장의 유치를 신청했다.

인근 지역사회에 매가톤급 충격을 던진 이 사건은 군 이미지와 주민여론을 우려한 화성군과 군의회의 유치 건의서 반려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산업자원부의 신청마감 4개월 연장 방침으로 또 다시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이번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신청 사태는 각종 갯벌 매립과 공단건설로 그렇지 않아도 황폐화된 아산만 주변의 지역주민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특히 국화도를 실질적인 생활권에 두고 있는 당진군 주민들에게는 핵폐기물 문제가 더 이상 '강건너 불'이 아닌 내 자신과 우리 후손의 생명이 걸린 '발등에 떨어진 불'임을 깨닫게 했다.

한편으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태고의 순수성과 생명성이 그대로 간직된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졌던 국화도가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거론되는 이유에 대해 많은 이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조상대대로 내려온 삶의 터전인 국화도에 주민들은 왜 핵폐기물을 유치하려고 하는가?

무엇이 국화도 주민들을 그토록 위험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을까?

국화도 현지를 방문해 주민들의 생활상과 그들의 불안한 미래상에 대해 취재했다.

온갖 수모 강요당하는 섬

금빛 모래사장위로 노을이 지면 비릿한 갯내음마져 한움큼 봄꽃의 향기를 내뿜는 곳.

인적없는 조용한 해변가엔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만 가득하고 늘 넉넉함과 고즈넉함으로 우리를 반기는 곳.

섬은 그 독특한 공간적 특성으로 인해 과거로부터 많은 사상가들에게 인류가 추구해야 할 이상향으로 상징됐으며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픈 현대인들에게는 막연한 마음의 탈출구였다. 허균이 홍길동에서 그리려 했던 율도국이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이르기까지 섬은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난 이상의 세계로 그려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육지로부터 동떨어진 채 언제든 고립될 수 있다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제주도의 4.3 항쟁이나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학살처럼 비극적인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또한 섬이 갖고 있는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안면도나 굴업도, 그리고 요즘의 국화도와 같이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거론되는 등 온갖 수모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그 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된 채 도계분쟁시에만 이따금씩 입에 오르내리던 국화도가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거론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한 때는 원시적 순수성·생명성 간직한 섬으로

"충남 당진 앞바다에 있으면서도 행정 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화성군에 속하는 묘한 섬. 한송이 국화처럼 탐스럽고 복스러운 섬. 그곳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헤매는 원시적 순수성과 생명성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경기도의 한 여행사에서 인터넷 관광안내 코너에 소개한 국화도에 대한 설명이다.

야생국화가 개화기면 섬 전체에서 만발하기 때문에 이름하여 국화도. 과거에는 섬에 꽃이 가득했다고 해서 만화도였으나 일제시대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여객선 조차 다니지 않아 사람의 발길이 뜸하기 때문에 아직 서정적인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국화도는 흔히 그림의 정물처럼 가깝지만 먼 섬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국화도에 핵폐기물 처리장의 유치신청 소식은 인근 지역의 여론을 들끓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장 황폐화로 섬의 미래도 황폐화

지난 3월10일 화창한 토요일 오후 국화도에 들어가기 위해 석문면 용무지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렸다. 만조때였으나 국화도는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리는 약 3.5km, 보트로 5분 거리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속해 있는 경기도 화성군과는 약 17km로 보트로 40여분 거리이다. 정기적인 여객선이 없어 국화도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보트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마침 이날 낮에 캔 바지락을 팔기위해 뭍으로 나왔던 국화도 주민이 있기에 그의 보트에 올랐다. 세찬 바람과 물살을 헤치며 다가선 국화도는 양옆에 토끼섬과 매박섬을 나란히 끼고 있어 흡사 3형제를 연상케 했다. 이들 세섬은 썰물때면 하나로 이어진다.

국화도 선착장 마을은 화창한 날씨임에도 어선들의 분주한 입출항도, 어구손질로 바쁜 어민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장 황폐화로 인한 새로운 풍경이다.

예전에 이곳 국화도는 천혜의 황금어장을 지닌 섬이었다. 농어, 준치, 연어, 숭어, 삼치, 전어, 우럭, 놀래미, 쭈꾸미, 박하지, 도다리, 광어 등 갖가지 생선들이 한배 가득 잡혔다. 당시에는 경기도 강화에서도 고기를 잡으러 어선이 찾아왔을 정도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굴과 김양식도 잘돼 상당한 수입원이 됐다.

그러나 80∼90년대에 대호 방조제와 석문 방조제가 건설되고 국화도 앞쪽 석문면 교로리에 한전 당진화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어획량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또한 근해에서는 여러 척의 모래채취선이 왕래하면서 작업하는 바람에 섬 주변의 갯벌은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자갈과 모래해변으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맨손어업도 점점 어려워져갔다.

물반, 고기반이라고 할 정도의 황금어장은 점차 황폐화돼 어획량은 1/3 수준으로 떨어졌다. 굴과 김은 점차 줄더니 아예 양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확이 되질 않았다. 수입이 떨어지자 주민수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빠져나가게 되자 고된 고기잡이를 할 수 없는 노인들은 맨손어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지천으로 깔렸던 굴이 사라지면서 새롭게 바지락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제 국화도 갯벌의 바지락은 주민들의 거의 유일한 수입원이 됐다.

각종 방조제와 당진화력 발전소의 건설로 인한 보상도 일시적인 목돈마련의 기회는 될지언정 섬 생활을 유지시킬 수 있는 지속적인 수입원은 되지 못했다. 또한 몇몇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관광객들이 증가하기 시작했으나 숙박시설, 샤워장, 화장실 등 기반시설이 변변치 않은 섬에서는 여름 한철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 결국 충남 청양 출신으로 서울에서 이주한 명모(62세)씨만 지속적인 투자로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을 뿐 대부분의 주민들은 별 수입을 올리지 못했다.

맨손어업이 생업인 이 마을 주민 양일부씨(61세)는 "석문 방조제와 화력 발전소가 들어서기전에는 갖가지 고기도 잘잡히고 굴과 김양식도 잘돼 그런대로 먹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생계유지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어장 황폐화·교육시설 낙후로 젊은이들 떠나

국화도 근해 어장의 황폐화는 수입의 감소로 이어져 특히 마을 젊은이들이 외지로 빠져나가게 된 원인이 됐다. 황폐화된 어장에서 더 이상 희망도 비젼도 없다고 판단한 젊은이들은 하나 둘 섬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이주는 지난 95년 우정초 국화도분교장이 폐교됨에 따라 더욱 가속화됐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젊은이들은 분교장마저 폐교된 섬에서 더 이상 지낼 수 없었다. 가까이는 화성군으로 멀리는 인천에 이주해 자녀를 공부시켜야 했다.

얼마전에도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하는 젊은이 한명이 사실상 섬을 떠났다. 이전부터 하던 일을 정리하지 못해 새로 이주한 경기도 안양 집과 섬을 오가고 있지만 자녀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섬을 찾는 발길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올해 마을 총무를 맡은 박윤영씨(38세)는 얼마전 당진군 석문면 용무지에 방을 새로 얻었다. 유치원에 들어가야 하는 아들의 교육문제 때문이다. 박씨 또한 전부터 하던 어업일 때문에 용무지의 방과 섬을 오가고 있는 실정이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섬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박씨는 "어장이 황폐화되는 바람에 섬에서 더 이상 비젼을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에 섬에 젊은이들이 거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유일한 탈출구로 믿어

어장 황폐화로 젊은이들이 떠나고 60∼70대 노인들만 섬에 남게 되자 더 이상 미래를 바라볼 수 없다고 생각한 주민들은 그들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하에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라는 '동아줄'을 선택했다. 문제는 그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일 경우 지금의 불안전한 삶마저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다는데 있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에 찬성하고 있었다.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만이 황폐화된 그들의 삶을 구원할 수 있으며 절대로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다.

유치신청 과정에서 섬을 찾아온 한전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에게 핵폐기물을 수백미터 지하에 묻고 콘크리트로 굳히기 때문에 절대 안전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만약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유치될 경우 간조시 드러나는 갯벌을 매립하고 지하 저장고에 핵폐기물을 묻은 다음 그 위에는 세계적인 관광지를 조성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를 지어 주민들을 입주시키고 연육교 건설과 함께 조상들의 묘는 납골당에 안치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 마을 박복만 이장(71세)은 "TV에서 핵폐기물 처리장 신청접수 정보를 듣고 한전에 문의한 결과 무난하다는 회신을 받고 주민 서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한전에서 신청서를 받은 박 이장은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일 기회가 없어 서명을 받지 못하다가 올초 이장과 어촌계장을 선출하는 마을회의에서 주민 전체 들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갈수록 희망을 잃어가는 주민들에게 핵폐기물 처리장은 유일한 탈출구로 비쳤던 것인지 한 사람의 반대도 없이 유치에 찬성했다.

박 이장은 "한전의 말대로라면 환경적으로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국제적 관광지로 변모한다면 관광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며 "비록 화성군이 건의서를 반려했지만 신청기간이 연장된 만큼 한전에 다시 청원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이 마을 주민인 박기용씨(61세)는 "우리라고 조상의 묘가 있는 섬이 파헤쳐지는 것을 좋아하겠는가"라며 "더 이상 어업으로는 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 섬에 들어온 후 이 마을 10여명의 신도를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하고 있는 국화교회의 조인환(30세) 전도사는 "어장의 황폐화뿐만 아니라 자가발전으로 인한 유류수송과 지하수 황폐화로 인한 식수난 등 각종 섬 생활의 어려움이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라는 선택까지 이르도록 한 것 같다"며 "주민들이 절대 안전하다는 한전의 말을 너무 쉽게 믿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환경파괴로 잠식당한 삶 공해시설 유치로 벗어나려는 주민들.

한때 황금어장이었던 국화도 근해가 왜 황폐화됐을까.

당진 환경운동연합(상임의장 김중회)의 김병빈 사무국장은 주변의 각종 간척과 발전소 건설을 이유로 들었다.

방조제로 막히기 전 석문만과 대호만은 민물이 바닷물과 섞이는 곳으로 물고기들이 산란과 부화를 위해 모여들던 장소라고 한다. 또한 이곳 갯벌에서 온갖 먹이와 영양을 섭취했기 때문에 간척공사는 거의 모든 어종의 생존의 터전을 파괴하고 말았다.

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는 바닷물 속의 플랑크톤을 감소시켜 녹조현상을 일으키게 한다. 녹조현상이 일어나면 바닷물 속의 산소 부족으로 김과 굴이 살지 못하며 백화현상으로 바위에 굴이 착화를 할 수 없어 양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산만의 각종 해사채취와 항로준설로 인해 유속이 빨라지면서 해변의 갯벌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청정해역에서만 자라는 굴과 백합 등은 사라지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바지락만 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당진 환경운동연합은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신청 공모라는 미명아래 산업자원부가 일부 섬 주민들을 몇푼의 보상금과 특별지원금으로 유혹해 유치신청을 조작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당진군민의 생활권인 국화도에 핵폐기물을 유치, 건설하려는 모든 계획을 전면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주민들은 매일 물이 빠지는 9시반쯤 갯벌에 나가 오후 3시까지 식사도 거른채 바지락 채취에 나선다. 청정해역에서만 자란다는 굴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바지락이 대신했지만 갈수록 오염이 심해지고 있는 아산만의 현실을 바라볼 때 앞으로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알 수 없다.

무분별한 개발과 각종 공해로 섬의 미래를 잠식당한 주민들은 이제 더 큰 공해시설의 유치를 통해 미래를 보장받으려는 아이러니한 선택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