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쓰레기땅의 오염에 경종울린 세계적인 사건
유산,기형아 속출, 미 러브캐널
47년 산업폐기물 매립-20여년 뒤부터 피해극성
국가재난지역 선포 여전히 생명 사각지대
산업쓰레기 2만톤
매립 넓은 평지조성
역사적으로 땅은 오염물질을 포함한 온갖 폐기물이 버려지는 장소로 이용되어왔다. 초기의 환경보존에 관한 노력은 주로 물과 공기를 정화시키는 것이었으며 땅의 오염에 관한 대중적 관심은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일기 시작했다. 그 직접적인 계기가 바로 러브캐널(Love Canal)사건이다.
1836년 미국정부는 나이애가라 폭포 부근에 운하와 발전소 건설계획을 세웠으나 실현되지 못한 채 사장되어 있었다. 1892년 이 사업의 경제성을 재인식한 월리엄 러브라는 사람이 운하건설을 시작하였으나 경기침체로 러브회사는 도산했고 나이애가라에서 1백야드 떨어진 곳에 1마일 가량의 운하만이 남게 되었다. 건설자의 이름을 딴 이 러브캐널은 지역주민들에게 수영, 스케이트등 레크레이션 장소로 이용되었다.
1942년 오대호 연안에 늘어나기 시작한 대규모 화학회사 중의 하나였던 후커화학은 당시 이 땅의 소유주였던 지방 전력회사와 폐기물매립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947년 후커화확은 러브캐널을 인수해 공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55캘런의 철제드럼통에 넣어 매립하기 시작했다. 드럼통 10만여개에 해당하는 각종 산업쓰레기물 2만여톤이 이 러브캐널에 매립된 후 흙과 쓰레기로 덮여져 넓은 평지를 이루게 되었다. 그뒤 이곳은 죽음의 물질이 발아래 묻혀 있다는 아무런 표시도 없이 잔디나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학교 운동장의
끈적끈적한 진흙탕
1950년대초 베이비붐을 타고 늘어나기 시작한 인구로 인하여 옛 운하 주위에 집과 학교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 러브캐널 지역은 운동장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최초의 사건은 1966년에 일어났다. 그해 어느 비오는 봄날, 이 운동장에서 놀이를 하던 존과 조에이가 끈적끈적한 진흙탕 속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아이들의 어머니는 “기름같이 찐득거리는 액체로 뒤덮인 아이들 옷을 벗기고 살갗이 벗겨지도록 닦아주었지만 지독한 냄새는 2~3주나 계속되었다”고 회상했다. 즉각 지방보건당국에 신고했으나 현장조사 결과 “아무 이상없음”이라는 대답뿐이었고 오히려 화학공장 노동자인 대부분의 주민들로부터 비난과 비웃음을 받게 되었다.
그로부터 12년 후 세계는 존과 조에이,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이 뛰어놀던 운동장이 바로 후커화학이 2백여종의 독성화학물질 2만여 톤을 매립한 장소임을 알게 되었다. 기름과 솔벤트, 그리고 각종 산업쓰레기의 혼합물 중에는 백혈병과 빈혈을 일으키는 벤젠, 신경계 호흡기 및 위장계통에 암을 일으키는 클로로포름, 트리클로로에틸렌, 만성호흡장애를 일으키는 메틸렌클로라이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2백여종의 화학물질 중에서 과학자들과 의사들에게 공포와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은 트리클로로페놀이었다. 이 운하에 버려진 2백톤의 트리클로로폐놀 중에는 베트남전에 고엽제로 사용되었던 다이옥신 1백30파운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독성 화학물질들로 인하여 그 지역 주택의 95%이상이 오염되었으며, 어린이들에게는 심한 천식, 언청이, 귀머거리등 선천성 기형아가 생겨났고, 부인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3.5배나 높은 유산율을 나타내게 되었다.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의 조사대상 36명중 11명(30.25%)이 염색체 이상으로 확인되었고, 임신출산한 15명중 2명만이 정상이었으며 나머지는 유산, 사산 또는 기형아, 미숙아를 출산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국가재난지역」선포
1978년 5월 환경보호청 등에 의한 조사가 이루어진 뒤 당시 카터 대통령은 러브캐널 지역을 국가적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주민들을 이주시켰으며 쇠울타리를 쳐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뒤에 밝혀진 일이지만 후커사는 이미 1958년 러브캐널 지역에서 놀았던 아이들의 폐기물에 의한 화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벤젠헥사클로라이드가 발생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1953년 학교부지를 찾고 있던 시교육당국에 이 땅을 매각한 후커사는 자기네가 오염시킨 땅의 소유권을 양도함으로써 법적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실제로 이 땅의 매각가는 단 1달러에 불과했다.
1980년 이후 정부당국의 공식적인 ‘사건해결’발표 후 언론을 포함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줄어들었지만, 수백명의 주민들은 후커사 및 시와 주정부를 상대로 9백만달러의 소송을 제기하였으며, 미 법무성도 러브캐널 정화를 위해 1억2천4백만달러의 소송을 후커사에 제기하였다. 이 소송은 1984년 12월 회사측이 1천3백명의 주택소유자들에게 총 2억달러에 가까운 보상을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게 되었으나, 피해자들은 사건의 진상이 뉴스화되면서 받은 정신적 충격과 계속되는 유산쪾기형아 출산 등으로 이 사건이 결코 끝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들을 이주시킨 현재까지도 쥐를 넣어 실험을 하면 오염되지 않은 곳의 쥐보다 생명이 반감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와 폐기물의 단순매립에 대하여 큰 경종을 울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