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으로 보는 우리 역사]
금주의 당진역사(唐津歷史)
5월 둘째주(5월 6일~5월 12일)
◆7일 ; 인호식씨 교통사업에 써달라고 기부
충남 당진군 석문면은 인천만과 당진읍간에 개재한 해안 청산의 반도로서 지리상 자연히 도선호안공사(渡船護岸工事)등 시설할 곳이 많으나 차등 사업에는 물건을 요함으로 교통시설에 미비가 많아 일반이 불편을 느끼는 바 당지 인호식(印護植,68)씨는 본래 돈후 독지가로서 자선사업에 공헌이 많아 명성이 높던 바 지난 7일에 또 본년 교통시설에 적당히 써달라고 근 천원을 기부하였음으로 면당국은 물론 일반이 씨의 공익 사업을 깊이 찬양하여 마지않는다고 한다. (조선일보 1937년 5월13일)
◆10일 ; 남한 단독선거 당진 김용재 당선
1948년, 5·10총선이 실시되었다. 한국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이다. 미국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가 불가능함을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남한만이라도 확실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이승만을 내세워 단독정부를 수립하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선거가 5·10 남한 단독 선거였다. 민족분단에 반대하는 김구 등의 정치지도자와 민중들의 저항에 부딪히기는 했으나 미국과 단정 추진 세력의 뜻대로 선거가 치루어졌는데 이때 뽑힌 의원들로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이들이 헌법을 만들고 국회 간선제에 의하여 이승만대통령을 뽑음으로써 8월 15일에 단독정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5·10총선거시 당진에서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김용재가 13,006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당진군지 참고)
◆12일 ; 합덕 구양교 준공
79,600원의 예산으로 작년 4월에 공사에 착수한 충남 합덕 구양교(九陽橋)는 근일에야 준공을 보게 되어 지난 5일에 천원의 예산으로 도교식을 거행하기로 되었던 것이 그간 준비의 미비로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다가 이제야 이루어지게 되었다. (동아일보 1933년 5월12일)
◆13일 ; 당진 범천면에 소작쟁의 백여건
예년 지주, 사음이 이 시기에 작권 이동을 감행하는 폭거는 허다히 목도하는 터이나 종전에는 소작인을 위하는 법적보장이 없었으므로 유일한 생명선인 소작권을 무리하게 박탈당하고도 호소할 곳조차 없던 소작인들이 소작조정법이 발표된 금춘이래로는 다투어 쟁의조정을 제기하게 되었으므로 각지에서 쟁의건수는 격증을 보게되는 경향인데 이를 닮아 당진군 범천면에서도 금춘 3월이래로 작권이동으로 쟁의조정을 당지 주재소에 제기한 건수만도 무려 백여건에 달하여 인수로 이백칠십팔십명이 된다는 바 대개 주재소에서 타협돼 소작조정위원회에까지 회부된 것은 지금까지 없다 한다. (동아일보 1933년 5월13일)
소작쟁의에 관하여
당진지역의 소작쟁의 기사가 있어 이를 소개하였는데 차제에 소작쟁의에 관하여 알아본다.
소작쟁의(小作爭議)란 소작농민이 소작조건의 개선을 위하여 지주를 상대로 전개하는 경제적·사회적 권익운동, 즉 농민운동의 하나였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소작쟁의는 주로 일제의 강점기에 이루어짐으로 농민의 권익운동 뿐만 아니라 식민체제에 대한 정치적 독립운동의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특히 일제하의 소작조건은 이른바 조선토지조사사업을 통해 확립된 식민지 지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수탈체제속의 조건이었으므로 여러가지 식민통제라는 복합성을 지니고 있었고 한국농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켜 지배와 수탈을 극대화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한국농민의 80%가 소작농으로 전락하였고 소작료도 국유지 소작료는 종전의 3할에서 5할로, 일반소작지의 경우는 5할에서 6할로 인상되었다.
1920년대에는 산미증식계획이 실시되어 수리조합비, 비료대 등 제부담까지 소작인에게 전가하여 실제로 7~8할의 소작료를 수탈당하였다고 한다. 소작기간도 1년으로 단축되어 장기적인 소작권마저 박탈당하였고 중간에서 소작인을 선정하고 조정하는 마름(사음), 농감(農監)의 농간도 심하여 그 착취가 극심하였다.
이에 따라 도저히 살 수 없게 된 농민들은 더욱 격렬하게 대항했던 것이다. 이러한 소작쟁의는 1930년대 말에 일제의 간악한 규제로 억압되었고 해방이후 농지개혁이 이루어져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당진의 경우는 평야지대가 많은 합덕지역에 많이 발생했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자료조사·글 : 김남석(nsk60@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