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당진시에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없어진 마을이나 없어질 위기에 처한 마을, 또한 자연마을 중에서도 농촌 고령화로 인해 전통의 맥이 끊길 상황에 놓여 있는 마을이 있다. 본지에서는 마을의 전설과 옛 지명, 보호수를 비롯한 자연환경, 열녀문·효자비 등 다양한 마을의 이야기와 마을이 가진 자원을 발굴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사와 영상으로 담아낼 계획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 보도합니다.

석문면 교로리(橋路里)는 신선이 왕래하던 다리라고 하여 ‘다릿길’이라는 의미로 이름이 붙여졌다. 그중 교로3리는 아산만에 돌출된 곳으로 난지도, 풍도, 육도를 왕래하는 종선의 출발지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진화력발전소 건립으로 사라진 마을들
현재 교로3리는 3개의 반으로 나뉘어 있다. 과거 마을에는 큰마실, 새골, 가생골, 그물뿌리 등의 자연부락이 있었다.
석문면지에 따르면 큰마실은 마을의 크기가 커 이름 붙여졌으며, 새골은 가생골과 큰마실골 사이에 있어 사이골이라고 불리다, 새골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렸다. 또한 가생골은 새골 뒤쪽에 있던 마을이였다. 새골과 가생골은 한국동서발전 건설로 현재는 없어진 자연부락이다.
또한 그물뿌리는 다릿길 북쪽 석문산 끝에 있는 곶이다. 어업하기 위해 그물을 치던 곳이라고 알려졌지만 잘못 전해진 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물뿌리 뒤에는 당산이 있었고, 당산에는 신당이 있었으나 한국동서발전 건설로 인해 없어졌다. 당산 아래에 있던 마을인 당산밑, 당밑, 당미티라고 불렀던 곳 역시 한국동서발전이 건설되면서 사라졌다. 그물뿌리 위쪽에는 한여목이라는 바다의 여울목이 있었다. 물살이 몹시 세어서 배가 다니기 어려웠다고 전해진다.
산신제와 용왕제를 지낸 소나무
한국동서발전 동문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당이송이라고 불리는 소나무는 발전소가 들어오기 전 당산에 자리했다. 해발 75m의 산전상에서 약 300여 년 동안 자란 적송으로, 과거 주민들은 이 소나무 앞에서 매년 섣달 그믐부터 정월 4~5일 경까지 산신제와 용왕제를 지냈다.
그러나 한국동서발전소의 건설로 당산이 없어지게 되자 1996년 5월 현재 자리에 한 그루만 옮겨 신고 ‘당이송’이라 명명하게 됐다.
전준환 이장은 “당산에는 소나무가 무척 많았다”며 “발전소가 건립되면서 당산이 없어지게 되자 소나무 한그루를 지금의 자리에 옮겨 심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교로3리 주민들은 매년 이 소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안전기원제를 지내고 있다고.
“1960~70년 대에는 송충이가 소나무를 많이 갉아먹었어요. 그런데 송충이가 당산에 있는 소나무는 먹지 않더라고요. 참 신기해요.”
한편 한국동서발전 홍보관 뒷산에 위치해 있는 석문각은 예로부터 주민들이 정월의 영롱한 일출을 맞이하며 복을 빌던 곳이다. 1972년부터 이곳에는 군부대가 주둔해 있었지만 한국동서발전 건설로 이전했고, 1999년 7월 정자가 설치됐다.
석문각에서는 사방이 확 트여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동서남북을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대난지도 뿐 아니라 경기도 안산에 속해있는 풍도와 육도 등도 볼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보는 일몰이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한여목(바다의 여울목)이 보이기도 한다.
1시간30분 걸어서 등·하교
현재 교로3리에는 약 480가구, 650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절반 가량의 인구가 일을 하기 위해 마을을 찾은 사람들이라고. 교로3리 토박이인 전준환 이장은 삼봉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당시만해도 지역에는 삼봉초등학교 뿐이었단다.
전준환 이장은 “버스가 없어 6km 정도의 거리를 걸어다녔다”며 “한시간 반 정도 소요됐는데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해가 떴을 때 집을 나서고 해가 떨어질 때야 집에 도착했다”면서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이 걷다 보면 모두 섞여 늘 비빔밥이 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릴 적 대호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마을회관 인근 주택가까지 물이 들어왔어요. 그쪽에서 수영하면서 자주 놀았죠. 게도 잡고요. 그곳이 우리들의 놀이터였어요.”
황금어장이었던 교로3리
현재 교로3리 주민들은 농업, 어업, 상업에 골고루 종사하고 있다. 특히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대게 양식장, 낚시터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교로3리는 김과 굴 양식 등의 어업이 활발히 이뤄지던 곳이었다. 태안 안면도 출신인 김갑주 노인회장은 김 양식을 위해 40년 전 석문면 교로3리를 찾았다.
김갑주 노인회장은 “황금어장이었던 교로3리가 이제는 전부 매립돼 김 양식도, 굴 양식도 할 수 없게 됐다”며 “하루종일 바다에 나갔다오면 지금보다 몇 배의 품값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40년 전과 지금의 교로3리는 많이 변했다”며 “내가 이주해왔을 때는 인심이 참 좋은 마을이였는데 외지인들이 많아지면서 옛날 같지 않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전준환 이장 역시 “옛날에는 동네 주민들이 모두 가족같이 잘 지냈다”며 “기쁠 때 같이 기뻐했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하면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더불어 “현재는 옛날과 달리 분위기가 삭막해졌다”면서 “이웃들이 서로 단합해 한마음 한 뜻으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