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 씨의 배에는 선주인 자신을 포함해 모두 네 명의 선원이 함께 탔다. 동력 장치 없는 풍선(風船), 돛배였다. 선원들의 월급은 잡은 물고기로 지급했다. 판매는 당시 하리에 살던 어촌계장 홍헌팔 씨가 주로 맡아서 해주었다. 물때는 밤하늘 달을 보고 알았다.
“물고기 잡는 걸 계산해가지고서 반은 배(선주 몫)로다 떼놓고 반은 선원들이 나눠가지는 거지. 오늘 10시라면 내일 1시간씩 느리니께. 물이 하루에 한 시간씩 늦어. 늦으니께 그거 따지는 거지. 그때는 주로 달을 보고 물이 어떻게 되나 알 수 있었지. 저녁 먹고 나가면 달 보면 몇 시경 됐겠구나 하고 달보고 짐작하지. 시계가 없으니께. 옛날 노인들은 그런 거로 짐작하지. 보름 여섯물. 배 다닐 때는 이제 물때 보는 법을 아니께. 물 여섯시간 들어오거든 여섯시간 쓰고.”
정기수 씨는 고령의 나이에도 바다에 나가 파도와 싸웠던 기억 등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바다에 떠다니니께 일 년에 몇 번씩 죽을 고비를 당하는데. 그냥 깜깜하니 밤에 큰 저 인천 앞바다 어디 다니다가 깜깜한데 그때 비바람 쎄서 번개 치면 기계배 같지 않고 바람으로만 다니기 때문에 큰 파도 만나면 군함도 꼼짝 못 햐.
고개를 반짝 제껴야 저기 파도 끄트머리가 보인다고. 그럼 그 큰 파도에 그 조그만 배가 타고 올라가는 거 보면 참 기맥히지. 그 꼭데기 올라가면 별이 훤히 보이지. 인제 살았구나 하다가 또 그놈이 숙일 적에는 한 30분 내려오는지, 아유, 숨도 못 쉬지. 어쨌던간 재주껏 해서 파도 꺼질 동안은 밀려 다녀야 하니께.”
그는 삽교천이 막히면서 해수면 어업을 접었다. 이후에는 인천과 서울 등 타지에서 생활했다. 지금은 고향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우현선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