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해 보면 삽교천변에 접해 있는 우강면 부장리, 신촌리, 강문리, 소반리, 내경리 일대의 지형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 1966년 9월에 촬영한 항공사진을 통해 수문통을 거쳐 부리포(강문리)까지 이어지는 수로의 폭이 지금의 폭보다 두 배 이상 넓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가판(신촌리)을 지나 부리포(강문리)로 들어갈수록 수로 폭이 줄어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1966년, 1977년, 1989년, 1995년에 각각 촬영한 항공사진을 비교하면 수문통 일대의 지형 변화는 더 여실히 드러난다.
삽교천이 매년 쌓이는 토사로 점점 수심이 얕아진 것은 조선시대 때부터 이미 발생했다. 조선 성종 때(성화14년, 1478년, 성종9년) 범근천(삽교천)이 토사로 수심이 얕아져 조운이 불편하게 되자 아산현 공세곶(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을 설치해 옮겼다는 것이다.
한편 이 지역은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기 전까지 만조시 해수의 범람으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어 왔다. 가장 큰 피해는 농사처의 염해였다. 포구에 가옥이 밀집하였던 수문통의 경우 집 안까지 바닷물이 범람하기도 했다.
“어렸을 적에는 여기 수문통 부근 둑이 한 번 터진 걸 내가 봤어. 둑이 터져서 물이 넘쳤지. 그때는 뭐 알림이나 그런게 뭐가 있어. 백중사리라든지 물이 많이 들어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감시는 있었던가봐. 둑이 터지니까 풍물 막 울리고 하니까 사람들이 막 금방네 나와서 막았지.” (이덕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