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은 확실하게 인생은 재미있게
N세대 농협맨 정영철씨가 사는 법
소년의 순수함과 프로의 노련함으로
남에게 베푸는 일을 보시라고도 하고 자선이나 봉사라고도 한다.
그 이름을 뭐라고 부르든 남을 위해 베푸는 일 중 가장 작으면서도 귀한 것이 ‘미소’라 하였다.
미소의 가치는 세상 사람 모두가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경우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디서도 웃음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야말로 끔찍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웃을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만일 거리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면 그에게 고마워하자. 그는 소중한 선물을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그 순간 값진 선물을 받고 있는 것이다.
농협중앙회 당진군지부에 근무하는 정영철(28세)씨는 미소를 지닌 남자다. 웬만한 금융기관과 서비스기관들이 친절과 미소라는 기치 아래 고객을 위한 봉사에 들어간 지 오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정씨의 미소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것이 애써 짓는 표정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이다. 어쩌면 젊음이 주는 특혜인지 모르지만 그의 미소에는 무더위의 짜증을 살살 부채질해주는 상큼함까지 담겨있다.
그 미소가 예사롭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일하는 부서가 딱딱하기 그지없는 ‘대부계’이기 때문이다. 주머니 두둑한 사람이 예금을 하러 오는 여유있는 창구가 아니라 당장 주머니가 아쉬운 사람이 조바심을 치며 찾아와 끝까지 긴장하다 돌아가는 곳이 대부계다. 종일 그런 업무를 하며 웃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미소가 없다면 긴장하고 있는 고객에게 여유도, 신뢰도 줄 수 없는 곳이 그곳이다.
그렇다고 미소 하나가 신뢰의 담보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 정씨에게는 분명한 태도와 깔끔하고 책임있는 일처리라는 또다른 미덕이 있다. 앳되어 보이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으로 지그시 밀어올리는 테없는 안경 너머에는 치밀해 보이는 눈매가 있다.
뭐니뭐니 해도 그는 20대 N세대다. 독립적이고 낙천적이며 프로답게 일한다. 93년 농협에 입사한 후 8년동안 손대보지 않은 일이 없을 만큼 많은 일을 군소리없이 해왔다. 심지어 군 제대 후 연기농협에서 근무할 때에는 여직원들과 함께 창구 센터에 앉아 청일점으로 일하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늘 일을 즐겼다. 이런 점도 N세대답다.
사무실에서 막내 축에 끼는데도 그의 업무철학은 단단하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상 고객을 편하고 즐겁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직업의식이다. 조금은 짜증이 나고 조금은 우울해져도 미소를 짓는 것은 이 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사명이라 여긴다. 그것이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길이다.
하지만 이내 이렇게 말하고 웃어버린다.
“하긴 그다지 괴로운 일도 없어요.”
그는 자신의 태생적인 낙천성도 사람 대하는 일이 적성에 맞춤인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의 상사 정광식 과장은 그에게 일을 맡기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20대 후반이어서 그런지, 조직생활에 인이 배겨서 그런지 정씨에게는 N세대답지 않은 면도 있다. 이기적이지 않은 것과 대인관계가 원만한 것, 그리고 독신으로 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비타협적이며 ‘일은 필수, 결혼은 선택’인 N세대의 성향과는 또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고객에게만 친절한 것이 아니라 그는 사무실 내에서도 누구하고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고대면 장항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그는 바빠서 사람 만날 시간이 없을 뿐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식의 장래를 위해 당신들의 현재는 늘 유보하며 사셨잖아요.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그분들께는 얼마나 허망한 일일까 생각이 들어요. 저는 늘 현재에 충실하게 살고 싶어요. 그렇다고 낭비나 허영을 일삼으면서 살겠다는 것은 아니구요. 일할 땐 일하고 쉴 때는 쉬면서, 여행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살고싶다는 거죠. 한마디로 즐겁게 살고 싶어요. 장래에 누가 저의 배우자가 될 지는 모르지만 저는 늘 재미있게 살 준비가 되어 있어요.”
‘재미있게 살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말처럼 탄력있고 신나는 표현도 없는 것 같다.
정씨는 자신이 컴퓨터 채팅을 즐기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전형적인 N세대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바쁘기도 하지만 채팅보다는 직접 사람을 만나는 일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다지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이제는 가끔 살아온 날을 돌아보며 아, 그랬지 하는 일도 더러 더러 있는 나이다. 철없던 사춘기 시절,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친구들 따라 공고에 진학하려던 그를 만류해 상고로 방향을 틀어준 선생님이 이제 와서 새삼 고맙다. 그토록 중대한 인생의 진로를 친구 따라 결정하려 했다니 참으로 철이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무엇도 후회는 없다. 어차피 공부는 평생에 걸쳐 하는 것이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잘 걸어들어 왔다는 생각이다. 막연히 은행원이 되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진로를 준비중이던 때에 선생님의 추천으로 입사시험의 관문을 넘은 지 8년째인 농협도 그 취지가 꽤 만족스럽다. 바이오 리듬과 그날 그날의 컨디션을 미리 알고 공연히 울적한 기분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자신을 관리하면서 짬짬이 필요한 책들도 사뒀다가 읽는다.
정씨는 요즘 농축협 중앙회 통합에 따른 부작용 속에서 정부의 지원약속 불이행에 대한 항의로 사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 같아 자주 마음을 추스른다.
창구 맨 오른쪽 번잡하지 않은 자리, 고객과 눈높이로 마주 대할 수 있는 자리에서 정영철씨는 N세대 다운 팔팔한 미소를 오늘도 고객에게 선사하고 있을 것이다.
김태숙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