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흔적은 물살에 씻겨 나가고 오늘 내가 처음으로 밟는 처녀지

왜목마을에서 동쪽으로 곧바로 바라보면 해뜨는 봉우리(노적봉)와 국화도 사이로 탁트인 바다가 보인다. 여기가 바로 아산만이다. 아산만은 조석간만의 차가 세계적으로도 두번째로 큰 곳으로 수직이동 격차가 최고 9.7m에 이르러 동해안 2m, 남해안 4m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

썰물이 많이 나는 사리 때에 왜목마을 선창 맨끝에서 조그만 선외기가 달린 보트를 타고 불과 5분거리를 가면 바다 한복판에 난데없는 모래섬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중앙천퇴. 천퇴(淺堆)라 함은 해양의 바닥이 솟아 올라 높아진 곳이란 말이다. 옛날 뱃사람들이 암초 다음으로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던 곳이기도 하며 “풀”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길이 1000m, 폭100m 정도의 넓은 모래벌인데도 살아있는 생물이 하나도 없다. 그 흔한 조개, 게, 낙지, 심지어 불가사리 조차도 없다. 그럼 여기는 사해(四海)란 말인가? 그렇지가 않다. 정작 그 반대라 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래 그 자체가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에 따라 모래벌은 위치가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모양도 달리한다. 유속의 힘에 따라 매일 모래가 이동하는 까닭에 정작 생물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모래밭은 사리 때는 4~5일간 1~2시간 정도 살짝 보여주고 수줍은 듯 물속으로 숨어 버린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곳을 거닐면 깨끗함, 신선함, 태고의 신비와 새로운 세상의 희망에 무지개꿈 같은 벅찬 설레임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소유의 욕구도 버리고 나를 잊어 버리고 자연의 일부분임을 깨달아 세상 모두를 사랑하고픈 큰 사람으로 변해있는 것을 보며 나자신에게 깜짝 놀란다.

온 세상이 모두 오염되어 있는 요즘 쓰레기 하나없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조잡한 것들이 하나도 없이 오직 자연 외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일 게다.

코발트빛 바닷물 위에 떠있는 모래사장, 누구의 발자취도 닿지 않은 처녀지. 어제의 자취를 바닷물이 지워버리고 새로운 모양으로 바꾸어 놓은 신천지를 만들어 놓았으니 오늘의 내가 최초의 발자취를 남기는 탐험가이다.

수백미터 밖에 멀리 보이는 야트막한 모래언덕은 그 너머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차오르게 하고 강의 흐름처럼 생긴 개울은 처음 보는데도 마치 추억이 있었던 것같은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마음껏 소리쳐도 아무도 나무랄 사람 없다. 벌거벗고 뛰어다닌들 누가 뭐라 하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자유. 나만의 세계. 맨발의 바닥에 닿는 산뜻한 모래의 감촉.

다정한 사람과 더불어 느끼고 싶다. 갑자기 혼자보다 둘이서가 더 좋겠다. 노루사슴처럼 뛰놀고 싶은 곳, 여기에 오면 누구라도 동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곳, 어쩌면 아담과 이브가 이렇게 순수했을까?

어김없이 조수는 밀려들어 차츰 모래톱은 잠기어가고 역사가 세월속에 묻혀가듯이 모래위에 남긴 나의 발자국들은 새로운 내일을 잉태하며 물결속으로 사라져 간다. 덩그러니 보트 위에 걸터앉아 물에 잠기어가는 모래벌을 둘러보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가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던 곳인지 찾을 수가 없다.

그래,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생활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끝없이 흘러가는 조수에 발을 담그며 세파에 더럽혀진 마음까지 씻어내자. 시원스럽게. 그리고 돌아가자. 정이 넘치고 포근한 어머니 품 속 같은 곳, 얼큰한 매운탕같이 구수하고 인심좋은 왜목마을로 뱃머리를 돌리자.

쪵(풀) : 우리고장 서해안의 옛 뱃사람들은 천퇴를 ‘풀’이라고 칭하였고, 해도나 전자탐지장치가 없는 시대에 범선을 항해할 때 천퇴가 공포의 대상이었음은 자명한 일이라 사료됨.

살펴본 사람 : 조선형(왜목마을 관광단지 유치추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