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사에서 나는 방문단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의 감정이 어떤 지를 무의식중에 살핀 것인데 이 시간만큼은 그들도 조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의사를 방문한 방문단은 먼저 윤봉길 의사를 참배했다.

이종현 당진농민회장과 우찌다. 방문단장인 마츠모토 야스히사(남, 52세, 주작목;메론·방울토마토)가 차례로 분향을 하고 나머지 일행은 묵념을 올린 다음 방명록에 서명을 했다.

마츠모토, 우찌다, 사와다 미요코, 이소다 코와시, 우에다 치요메, 우노키 사치코, 마츠모토 쥰코 등 일곱명의 일본인이 서명을 하니 “웬 일본 사람들일까?” 안내하는 아가씨가 의아하게 생각할까봐 나도 농민회 직책과 함께(구마모토 농민 방문단과 함께)라는 수식을 붙여 서명을 하자 아가씨는 얼른 이해를 한 듯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방문단의 안내를 돕기 위해 ‘예산주민연대’의 성기원 사무국장이 미리 예산군청에 협조요청을 했고 덕분에 관리소장의 세밀하고 성의있는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기념관과 유품 전시관, 생가 등을 차례로 들러 많은 공부를 했는데, 내가 가장 관심을 둔 건 윤봉길 의사가 야학을 열어 농민을 일깨우기 위한 교재로 만들었다는 농민독본이었다.

구마모토 현민의 회 간부 중 한사람이 교포인데 활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자기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윤봉길 의사라며 농민독본을 꼭 좀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농민독본의 사본이나 출판물을 구하려고 인터넷을 뒤졌지만 구하지 못했다.

농민독본은 본래 천도교의 농민계몽운동 기관인 ‘조선농민사’에서 발간했던 것을 윤봉길 의사가 자기 사상을 보완해 저술한 것인데 유품 전시관의 유리상자 속에 보존되어 책의 내용을 전부 읽을 수 없었다.

관리소에서 현 월진회장 윤규상씨와 이상재(현 임성중학교장)씨가 같이 저술한 윤봉길(도솔출판사)이라는 책 한권을 사서 읽어보니 농민독본 내용을 대략 정리한 대목이 있는데 중간 중간 중요한 부분만을 인용하여 역시 전체를 볼 수 없었다.

“…모든 힘을 농민에게로 돌립시다. 조선의 주인공인 농민은 이때까지 주인 대접을 못받고 살아왔습니다. 그까짓 농군놈들, 그까짓 촌놈들, 그까짓 뱃사공놈들이라고 학대하고 멸시함이 정말 혹독하였습니다. 온 세상이 다 농민을 사람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조금도 돌보지 아니하여 왔습니다. 따라서 조선의 주인인 농민은 도리어 헐벗고 굶주리고 기역도 모르는 불쌍한 가난뱅이 눈뜬 소경이 되었습니다. 이래서야 될 수 있습니까. 주인이 못살면 다른 것도 따라서 못사는 법입니다. 우리 조선에서 농민이 이처럼 빈궁하고 무지하다 함은 결국 전 조선이 못살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부터 모든 힘을 농민에게로 돌려야 됩니다…”

윤봉길 의사의 사상과 의거가 바로 동학 농민운동의 연장이고, 오늘날 미국의 내정간섭 반대, WTO반대, IMF반대, 수입농산물 반대 등의 운동을 펼치는 것도 동학농민운동의 계승임을 나는 생각해 봤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학과 시간에 목총을 메고 약 20㎞거리의 충의사까지 행군을 했던 기억이 났다.

원치 않았던 교과였기 때문이었을까? 이곳을 두번씩이나 방문하고도 윤봉길 의사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던 나 자신의 부끄런 심중과는 달리 방문단은 관리소장의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연신 메모를 하며 열중하였다.

일왕의 생일날인 천장절에 일본 군부가 대중국 전승을 기념하는 행사장에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군 사령부의 수뇌들을 사상케 했다는 설명으로 기념관 관람을 마무리 할 시점에서 나는 방문단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의 감정이 어떤지를 무의식중에 살핀 것인데 이 시간만큼은 그들도 조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 전체의 프로그램이 너무 의식화(?)로 진행되는 것 같아 내심 미안한 감도 들었으나 요즈음 한·일간의 정세가 그러니 만큼 꼭 필요할 것이라 여겨져 계획대로 강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다음 목적지인 태안군 기지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선 당진 참여연대와의 교류가 계획되어 있었다.

전농 충남도연맹 부의장 / 전 당진군농민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