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과 굴욕의 세기를 넘어
새로운 천년의 시대가 왔다. 새로운 세기가 왔다. 어느 때든지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출발에는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난 세기를 뒤돌아 보며 앞으로 21세기에 새 희망으로 새로운 천년을 열어야 한다.
지난 세기 우리는 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하지도 못했고 이 때문에 세계사의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빼앗기고 끌려가고 짓눌린 망국의 35년사요, 한민족 수난의 축소판이었다. 일제 35년! 그것은 우리 한국인에게 굴종과 인고, 그리고 피탈의 대명사였다.
일제가 무모하게 벌인 전쟁에서 마지막 발광을 하던 1944년쯤 우리 농촌의 어느 노인을 생각해보자. 대대로 농사짓던 땅은 빼앗긴지 이미 오래고 아들은 징용에 끌려갔다. 끌려간 아들은 북해도 어느 탄광에서 중노동과 굶주림에 지친 나머지 “어머니 보고 싶어요.”“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는 세마디의 낙서를 남긴 채 싸늘한 시신이 됐다.
그의 딸은 어떤가. 정신대로 붙들려갔다. 군 간호원이나 전선 군수요원으로 보낸다는 말은 말짱한 사기였다. 딸 역시 중국전선으로 끌려가는 도중 열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해버리고 말았다.
양식도, 기르던 소도, 식기마저도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노력봉사에 동원되어 주린 배를 움켜쥔채 잡초를 베고 있었다. 까짓거 농사를 지으면 무얼하나 몽땅 털어 버리고 먹을거라고는 조나 콩, 그리고 사료에나 쓰이는 콩깻묵 뿐인걸. 지금 베고 있는 잡초는 자신의 농사에 쓸 것이 아니었다. 그것까지 공출용으로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주름진 노인의 얼굴엔 일제가 할퀴고 지나간 곤욕의 산물인양 이마에 굵은 주름이 무성했고 뼈에 사무친 망국의 설움이 충혈된 동공에 역력했다. 누가 이 노인의 인생을 보상하며, 그 누가 이 노인의 가슴에 맺힌 한을 달래줄 것인가. 그는 조국 광복을 그리며 눈을 뜬 채 아사하고 말았다. 바로 이 노인이 우리 당진군의 어느 면 어느 마을의 노인이 아니고 누구였겠는가. 우리 역사에 이 보다 더 비참했던 시기가 또 있었을까.
이처럼 우리에게 지난 20세기는 절반의 세기였다.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겨야 했고 외세에 의한 광복은 미·소 냉전의 와중에서 동족간의 참혹한 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불렀다. 다행스럽게도 남은 반세기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이뤄냈다. 나라를 세웠고 근대화와 민주화를 성취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붕괴와 탈냉전의 세계 흐름 속에서도 민족분단의 현실은 여전하고 한반도는 세계에서 유한 냉전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또 장기간에 걸친 개발독재하에서 정경유착과 부패가 구조화되었고 그것은 지금껏 나라의 암적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그 뿐인가. 맹목적인 지역주의와 비합리적인 연고주의, 편협한 이기주의 등 전근대적인 의식과 관행이 낡은 제도와 맞물려 우리 삶의 방식을 지배하며 우리사회의 질적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전근대성의 탈피를 주도해야 할 정치는 지역주의에 근거한 비민주적 보스정치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화와 불의의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희망을 얘기할 수 있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 스스로의 개혁을 통해 새시대에 걸맞은 정치와 관행, 제도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가 한세기 전 겪어야 했던 ‘국가실패’나 ‘민족실패’를 거듭해야 할지 모른다.
21세기 첫해에 우리가 반드시 다져야 할 것은 정치개혁이다. 한 세기를 두고 외쳐왔던 것의 하나가 정치개혁이었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미결로 해를 넘기고 숙제로 떠안았다. 그동안 정치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정치가 아니라 가치의 혼돈이었다. 정치권은 부패고리의 온상이었고 정치는 사리분별없는 권력기구나 다름없었고 정치인은 사리사욕만 밝히는 꾼들로 끝내는 오명을 쓰고 추락했었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고서는 나라가 바로 잡히지 않고 경제와 사회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올해 새 천년의 첫해에 정치개혁을 시험하는 정치행사가 열린다. 오는 4월 총선에서 진정한 유권자 혁명으로 새로운 정치의 틀을 만들어 참된 민주화의 꽃을 피우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민족화해와 통일, 국민적 역량을 세계로 뻗치는 큰길을 가자. 우리에게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문화전통, 높은 교육수준과 근면성이란 훌륭한 자산이 있다.
새희망 새마음으로 새천년의 역사를 우리 당진군민이 선두에 서서 창조해 나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