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의 다짐을
벌써 잊는 이들에게
2천년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고 아울러 새로운 천년도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대에는 나도 달라져 보리라 결심하고 또 기대도 한다. 비록 올 한해 뿐이라 해도 혹은 작심삼일에 그치더라도 희망과 새로운 각오,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일은 좋은 것이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꿈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 새로운 느낌, 신선한 느낌은 그 자체로 좋은 신의 선물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 세기초, 연초, 또는 월초의 새로운 느낌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긴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이 일을 성공적으로 못하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이렇게 이렇게 생활해야지’ 해놓고도 점심 때가 지나고 오후가 가고 저녁이 될 때면 아침의 그 기분은 어디로 갔는지 하루가 또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그 좋은 느낌과 계획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히 놔두면 잊어버린다는 것은 사람에게는 당연한 이치 중의 하나다.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한가지 노력만 더하면 된다. 잊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자기에게 맞도록 찾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면 책상의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자기의 소망과 계획을 적어놓고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것이다. 또 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면 이동차량의 운전석 앞에, 또는 이동전화의 작은 모니터에 그 소망을 기록해 수시로 보고, 볼 때마다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연초에 세운 계획을 꾸준히 생활에서 이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바로 이 방법과 요령을 터득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2천년대에는 통합적인 가치와 통합적인 인간이 환영받을 것이다. 주어진 일만 반복하는 사람보다 전체를 파악하고 전체 안에서 유기적이며 유동적으로 업무를 조절하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은 인생의 흐름을 알고 그 흐름에 따라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소망과 계획을 이루기 위해 작지만 창조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사는 능력도 거기에 속한다고 본다.
새시대의 가장 큰 사회적인 가치는 행복과 공존일 것이다. 이 두가지는 물질적인 부와 혼자 차지하는 성공과 남들의 인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극복과 나눔으로 얻어지는 정신적인 결실일 것이다.
2천년은 먼저 자신과의 작은 약속을 지키고 가진 것을 나누는 일로 시작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