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19 · 문화·교육 · 박경미
[업체탐방] 면천면 대치리 누리농원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된장과 간장
… 귀농했다. 대치리 1호 귀농인이라는 부부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시골에 살고 싶었다”면서 “교회 수련회로 당진을 방문했던 인연으로 당진으로 귀농했다”고 말했다. 주변에 민가도 없던 아주 조용한 농촌 마을에 터를 잡았다. 무엇을 하면 지역 농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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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건 · '시골 마을에' · 최근 기사부터2 / 7쪽
2022.08.19 · 문화·교육 · 박경미
… 귀농했다. 대치리 1호 귀농인이라는 부부는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시골에 살고 싶었다”면서 “교회 수련회로 당진을 방문했던 인연으로 당진으로 귀농했다”고 말했다. 주변에 민가도 없던 아주 조용한 농촌 마을에 터를 잡았다. 무엇을 하면 지역 농민들…
2022.08.12 · 지역사회 · 임아연
…선거리로 불과 3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방계리에서는 아늑한 옛 시골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에서 내다보이는 고속도로와 그 너머의 아파트의 모습은 푸른 들판이 바람에 물결을 일으키는 방계리 마을 풍경과 대조돼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
2022.05.30 · 문화·교육 · 박경미
…됐던 바리스타 진로·직업 체험도 내년부터 다시 이어갈 생각이다. 그는 “시골 마을에서 바리스타에 대해 공부하고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면서 “핸드드립 사용법도 교육하고 와플 등의 디저트 만들기도 하면서 학생은 물론 어른들도 굉장히 좋아했…
2022.04.05 · 산업·경제 · 임아연
…러했다. 손 대표의 고향은 서해의 보물 중 한 곳인 태안 안면도다. 어촌마을에서 아버지는 평생 어부로 살아왔고, 어머니는 바다에서 나는 것들로 음식을 해 가족을 먹였다. 손정의 대표도 자연스럽게 바다가 삶의 터전이었다. 20대부터 10년 넘게 서울 노…

2021.12.02 · 산업·경제 · 당진시대
…. 그는 노트를 펼쳐 놓고 일 년 동안의 수입을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시골 민박으로 올린 수입은 20여만 위안(약 3,716만 원), 사과, 체리, 밤 등 농산물 판매로는 16여만 위안(약 2,973만 원)을 벌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랜(五莲)현…
2021.09.13 · 지역사회 · 박경미
…을 일을 논의하고, 정미면을 방문한 손님들을 맞이하기도 한다. 요양하러 시골에 터 잡아 카페를 운영하는 배창선 대표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서울에서 30년간 살다가 몸이 아픈 남편의 요양을 위해 시골 마을로 이주했다. 서산시 지곡면에서 잠시 살다가 지…
2021.01.15 · 산업·경제 · 박경미
…교역의 중심지로 무역이 활발한 하이퐁에서 자란 도시여성이 순성면 아찬리 시골 마을에 둥지를 틀면서 뜻하지 않게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마을에 집이 거의 없고 밭이 지천인 모습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 야속 당진에 시집 왔…
2020.10.19 · 정책·행정 · 김예나
…구가 적고, 마을 수도 적은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당진 시내권과는 달리 시골 정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기애애하고 단합 잘 돼” 대호지면이장협의회에는 대호지면 12개 마을의 12명 이장들이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매월 월…
2020.09.11 · 문화·교육 · 한수미
…준)는 지겹다. 배우고 싶은 자동차 수업도 없고, 학원조차 없을 정도로 시골인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읍내’ 학교는 다를 것만 같다. 자동차 수업도 들을 수 있고, 급식도 맛있고, 애들도 많고, 학원도 있는 읍내 학교로 전학 가자고 자꾸만 조른다. …
2020.07.14 · 지역사회 · 김예나
…라기를 심은 것을 시작으로 우산리가 ‘해바라기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시골 정취에 반해 귀농 경북 의성이 고향인 장병대 씨는 13년 전 아내 최태숙 씨(우산리 부녀회장)와 함께 당진으로 귀농했다. 서울에 살면서 30년 간 자동차 부속품인 카데크를 제…
2020.03.02 · 산업·경제 · 김예나
…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따뜻하고 넉넉했던 시골풍경, 즉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좇아 귀농한 것이다. 당진 역시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꾸준히 귀농인 수가 증가했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만 살았던 이들에…

2020.01.23 · 문화·교육 · 박경미
…안 시인은 결혼과 함께 지난 1984년 순성면 갈산리에 둥지를 틀었다.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며 자녀를 키우던 그는 자연스레 교육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당진초 근처에서 문구점을 운영하기 시작한그는 현재 구몬학습 교사로 일하고 있다. 시를 쓸 뿐 아…
2019.05.31 · 문화·교육 · 박경미
…페 나도미를 지었다. 카페 나도미는 논 사이에 자리한 전원카페로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이 대표는 “면천면은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데다, 면천읍성도 복원·정비되고 있어 당진의 새로운 관광 메카가 될 것”이라며 “최근 사람들이 면천…
2019.05.18 · 지역사회 · 임아연
…문에 인천에서 당진으로 내려와 살고 있는 이들은 면천읍성 인근 고즈넉한 마을에 살고 있다. 아이들은 자연을 가까이 하면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시간이 많다. 대도시에서만 살다가 작은 시골마을에서 사는 게 불편할 법도 하지만, 여유로운 전원의 삶이 그저 감…
2019.03.29 · 산업·경제 · 한수미
…우 옹은 “일생을 사는 동안 편케 못살았다”고 운을 뗐다. 일제강점기, 시골마을인 송석리 역시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일본어를 가르쳤다. 일부 가정에서는 일본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며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송산국민학교를 다녔던 그는…
2019.03.25 · 문화·교육 · 당진시대
… 원정시위’였다. 만세운동 대부분은 그 지역의 장날을 이용하거나, 면내 마을에서 면사무소나 주재소 등 관공서가 있는 소재지로 행진했다. 물론 인근 면의 장날을 이용해 원정 시위를 전개한 경우도 더러 있기는 하다. 김포군의 만세시위는 대곶면 주민들이 인…
2019.01.26 · 지역사회 · 한수미
…들만 아는 그런 곳이 됐다. 그는 “서울사람들이야 소문을 듣고도 이 먼 시골 대호지에 있는 한약방에 올 수 있어도, 오대한약방이 서울로 가면 대부분 노인들인 대호지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한약방에 가기 어렵다”며 “그래서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
2018.10.21 · 지역사회 · 김예나
…읍 이장단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노재학 회장은 “어릴 적 송악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도시화·산업화가 되면서 도·농복합지역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읍소재지 마을은 젊은 층이 지속적으로 유입돼 인구가 증가하고 있지만 몇몇 마을을 …
2018.09.11 · 문화·교육 · 임아연
…이 끝나면 일부러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등 속세(?)와 멀리 떨어진 시골 학교를 찾아다니며 근무했다. “다행히 아내와도뜻이 맞아 방방곡곡 열심히 돌아다니며 살았어요. 그렇게 살다보니 복을 받았나, 다녀본 곳 중에 여기가 가장 좋더라고요. 은퇴 후 …
2018.08.20 · 문화·교육 · 한수미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 당진과 서울 오가며 공부 면천면 자개리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홍서라 씨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책을 즐겨 읽었다. 그림 그리는 것 역시 좋아했던 그는 언니를 따라 자신의 꿈도 만화가로 정했다. 남산초와 면천중을 졸업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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