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9일, 매우 의미 있는 학술회의가 당진시청 대강당에서 열렸다. 주제는 ‘당진지역 항일독립운동과 사적지’였다. 발제자들은 당진지역 항일의병부터 면천보통학교 3.10만세운동과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까지 다양한 연구방법을 활용해 당진지역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했다.
이 가운데 필자의 관심을 끈 부분은 ‘대호지·천의장터 3.1운동의 성격과 특징’이라는 발표문이었다. 발표자인 충북대 박걸순 교수는 ‘4.4만세운동’을 다른 지역 만세운동과 일일이 비교하면서 객관적 입장에서 ‘역사적 의의’를 부여했다. (한국근현대사연구 제84호, 2018 수록) 이번 호에서는 그가 제시한 ‘4.4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요약해 소개하고자 한다.
면장과 면서기가 주도한 대표적 시위
첫째, 대호지·천의장터 4.4만세운동은 식민통치 말단기구인 면사무소의 면장과 면서기가 주도한 대표적인 시위였다. 실제 면장과 면서기들은 일제의 하수인이었다. 대부분의 만세운동에서 이들은 만세운동을 저지하거나 탄압했다.
경기도 수원에서는 면장이 군중의 만세운동 참여요청을 거부했고, 평남 강서군에서는 면장이 일본 헌병에게 군중에 대한 무차별 사격을 종용했다. 이 때문에 면사무소는 식민통치를 원망하는 시위대의 주요 공격대상이 됐다.
물론 면장이 직접 만세시위를 주도한 사례도 있다. 경기도 진위군 시탄면사무소의 만세시위와 남원군 덕과면 만세시위는 대호지면과 매우 비슷하다. 이들도 면사무소 등사판을 이용해 각종 문서를 등사해 배포했다. 하지만 만세운동의 전개과정이 일사분란하다는 사실에서 4.4 만세운동은 가장 대표적이면서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면사무소의 등사기는 서류 등사에 유용했고, 면사무소 광장은 시위대의 발대식 장소였다.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앞장섬으로써, 면민들은 상당한 위안과 함께 항일 투쟁의지를 북돋을 수 있었다.
이동 원정시위의 전형적 사례
둘째, 4.4 만세운동은 전형적인 ‘이동 원정시위’였다. 만세운동 대부분은 그 지역의 장날을 이용하거나, 면내 마을에서 면사무소나 주재소 등 관공서가 있는 소재지로 행진했다. 물론 인근 면의 장날을 이용해 원정 시위를 전개한 경우도 더러 있기는 하다.
김포군의 만세시위는 대곶면 주민들이 인근 양촌면 양곡장날을 이용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경남 고성군에서도 구만면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한 뒤, 장이 열리는 회화면 배둔리 장터로 10여 리를 이동했다. 이들은 장꾼들과 800여 명의 군중을 이뤄 만세운동을 전개한 뒤 구만면으로 복귀했다.
구만면의 시위는 대호지·천의장터 4.4만세운동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3.1운동 당시 ‘이동 원정시위’로는 4.4만세운동이 가장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라고 연구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198명 재판에 회부
셋째, 4.4만세운동은 단일 만세시위로서, 다수의 피체와 수형자가 발생했다. 도시가 아닌 바닷가 시골마을, 장도 서지 않는 벽지 마을에서 주도한 만세시위로 4명이 순국하고, 198명이 재판에 회부됐으며, 그 중 130명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3.1운동사에서 매우 특기할 사례다.
일제의 재판을 통한 사법 탄압의 극치는 경기도 양성·원곡 시위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이 시위에서도 50명만이 재판에 회부되었을 뿐이다(대부분 10년 이상의 중형을 받음). 단일 시위로 가장 많은 수형자는 경북 영덕군 영해장터 시위에서 나왔다. 이곳에서는 3000여 명이 참여해 170명이 재판에 회부됐고, 142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따라서 4.4만세운동은 유죄판결을 받은 수가 영해장터 시위 다음으로 많았다. 그러나 4.4 만세운동이 1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했음을 고려하면, 규모 대비 수형자 비율은 4.4만세운동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대호지면에 가해진 일제의 폭압
넷째, 4.4만세운동의 경우, 일제 경찰은 88명의 참여인들에게 태형 90도를 일률적으로 가했다. 태형이 널리 시행된 것은 유치장이 부족한 실정에서 비용 절감과 형벌의 가혹함 때문이다. 충남에서 태형을 받은 수는 청양군이 291명(정산 156명 운곡 94명 등), 홍성군이 256명(금마 176명, 홍동 50명, 장곡 12명 등), 아산군이 185명(선장 109명, 송악 41명)이었다. 면단위 순위로 대호지면은 금마, 정산, 선장, 운곡면의 뒤를 잇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태형 30부터 90까지 차등을 두고 가했다. 그러나 대호지면은 88명 전원에게 최고형인 90도 처분이 내려졌다. 태형 90도의 일괄적 처분을 내린 곳은 전국에서 대호지면이 유일하다. 4.4만세운동에 대응하는 일제의 탄압적 시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토록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은 치열했다.
이상으로 5회에 걸쳐 당진지역 3.1운동의 주요 쟁점과 역사적 의의를 정리해 보았다. 생명을 걸고 독립을 위해 항쟁한 당진지역 애국지사의 위업에 비교한다면, 후손들의 연구 성과는 턱없이 부족하다. 3.1운동 100주년에 즈음해, 창의사에 배향된 603위 선열과 그 중 한분인 진(振)자, 철(轍)자 조부님의 뜻을 기리면서, 당진 전지역의 3.1운동 규명을 위해 전력할 것을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당진지역 독립만세운동의 배경 2. 면천공립보통학교 3.10독립만세운동과 주동 학생들
3.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과 김좌진·한용운 관련설 4. 4.4독립만세운동의 참여인과 이인정, 남주원, 송재만 5. 당진지역 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





